"만원도 비싸다" 초저가로 미국 홀린 중국 쇼핑몰 라이벌, 거칠어진 '집안싸움'

입력
2023.08.04 04:30
21면
미국 사로잡은 초저가 쇼핑몰 티무·쉬인
점유율 경쟁 격화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단돈 2달러대 티셔츠, 5달러짜리 바지 등 '초저가' 상품으로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중국의 두 쇼핑 플랫폼, '티무'(Temu)와 '쉬인'(Shein)의 경쟁이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쫓고 쫓기는 점유율 싸움을 이어온 두 업체는 급기야 서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행을 준비하고 있다.

티무와 쉬인은 격화하는 미중 갈등에도 미국에서 최고 인기 쇼핑 플랫폼에 오르는 등 이례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미 정부의 규제나 미국 업체의 견제 때문이 아니라 집안싸움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티무는 지난달 14일 쉬인이 미국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보스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쉬인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제조사들이 티무를 기피하도록 강요했다는 게 티무의 주장이다. 티무 측은 "쉬인이 제조업체들에 티무와 거래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충성 맹세'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제했다"며 "이는 가격 상승을 부추겨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총구를 겨눈 건 쉬인이었다. 쉬인은 지난해 티무가 쉬인의 상표나 저작권 등을 훔쳐 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쉬인을 사칭했다는 이유를 들어 일리노이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때문에 이번 티무의 소송 제기는 쉬인의 공격에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업체의 관계가 나빠진 건 미국 시장 1등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미국에 먼저 진출한 건 Z세대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초저가 의류를 주로 파는 쉬인으로 2017년 데뷔 후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성장했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세컨드메저에 따르면 쉬인의 매출은 팬데믹 기간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자라와 H&M 매출을 추월했다고 한다.

쉬인의 전성기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시장에 등판한 티무 때문이다. 생활용품부터 의류, 가전까지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인 티무는 미국에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놓은 직후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1위에 오른 뒤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 중이다. 티무의 월 방문자 수는 미국 출시 두 달 만에 쉬인을 넘어섰고 매달 격차를 벌리고 있다. 6월에는 매출 기준으로도 쉬인을 처음 제쳤다.




중국 쇼핑몰 '집안싸움', 미 당국 규제 빌미될 수도


테크업계에선 그러나 쉬인과 갈등 격화로 티무도 부메랑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두 업체의 상호 견제가 중국 업체들의 불공정 관행을 돋보이게 해 미국 정부의 규제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선 경쟁사에 물품을 납부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번에 티무가 쉬인이 반독점법을 어겼다고 문제 삼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티무와 쉬인이 서로를 향해 치고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두 업체의 '중국 색채'만 더 강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쉬인은 최근 본사를 중국 난징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고 자사 홈페이지에서 '중국'이 들어간 문구를 삭제했다. 티무도 홈페이지에서 모기업인 중국 핀둬둬의 흔적을 지웠고 핀둬둬는 3월 본사를 중국 상하이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기기도 했다. 중국 정부에 미국 소비자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등의 의심의 싹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유명 투자 전문가 케빈 수는 "두 회사는 이미 미국 의회의 타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티무와 쉬인의 맞소송은 중국과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노력을 수포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