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지도부가 국정조사를 언급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중앙선관위원회 고위직 채용비리,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 이어 '철근 누락' 아파트 논란 등 주요 현안마다 국정조사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의 국정조사 요구 이면엔 전·현 정부를 겨냥하고 있어 사실상 내년 총선 주도권 확보를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안은 현재 12건(국민의힘 7건, 더불어민주당 5건)이다. 이 중 실제 국정조사로 이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관련 국정조사뿐이다. 대부분 여야 간 조사 범위, 증인 채택 등에 대한 이견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여야가 지난 6월 합의했던 선관위 국정조사의 경우 감사원 감사 개시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번에 여야가 주장하고 있는 국정조사 사안들은 정치적 의도가 강해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큰 만큼 합의를 통한 실시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양당 대립이 격화될수록 국정조사 합의를 위한 공간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권 전직 국토부 장관 무슨 일 했는지 밝혀야 한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대통령 처가 고속도로 게이트가 점입가경"(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양당 지도부의 발언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철근 누락 등 아파트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를 검토하겠다"면서도 당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통한 사실 규명을 우선순위에 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성 없는 국정조사 카드 남발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여야가 '네 탓' 정쟁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국정조사를 고리로 상대 당을 향한 의혹을 키우면서 정국 주도권까지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요구한 '양평 고속도로' 국정조사에 "정치적 주장만 난무한다"며 선을 긋고 있고, 민주당 역시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아파트 부실시공' 국정조사보다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국정조사 요구안을 제출한다면, 여야가 13번째 요구안만 쌓아 둔 채 정쟁만 되풀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국정조사가 본래 취지를 잃고 정쟁 '만능키'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온갖 난맥상의 책임을 전·현 정부에 돌리면서 무한정쟁을 양산하고 있다"며 "다분히 총선을 겨냥한 행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