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패배 결과를 뒤집기 위해 각종 불법 시도를 한 혐의로 1일(현지시간) 기소됐다. 성추문 입막음과 기밀문건 무단 반출 혐의로 기소된 데 이어 3번째 기소다. 특히 이번 기소는 미국 민주주의를 뿌리째 뒤흔든 2021년 1ㆍ6 워싱턴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와 맞물려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2024년 대선 레이스에서 치고 나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로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잭 스미스 연방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를 검토해온 워싱턴 연방 대배심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스미스 특검은 △미국 정부 기망을 위한 모의 △미국 의회 선거 결과 인증 등 공무 집행 방해 △공무 집행 방해 모의 △투표권 침해 모의 등 네 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각각 징역 5~20년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 혐의다.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비롯한 6명도 공모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스미스 특검은 공소장에서 “피고인은 2020년 11월 3일 (대선) 선거일 이후 '두 달 이상 결과를 결정지을 만한 선거 부정이 있었고 내가 승리했다'는 거짓말을 퍼트렸다”며 이런 거짓 주장으로 인해 극심한 국가적 불신과 분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6일 선거인단 투표 인증을 위한 상ㆍ하원 합동회의 날 그의 지지자들이 의사당으로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5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기소됐다. 스미스 특검은 기자회견에서 “의사당 공격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며 “피고인(트럼프)의 거짓말이 그것을 부추겼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일 워싱턴 연방지법에 출석해 기소인부절차를 거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번 기소에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 행정부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며 선거 개입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 대변인 스티븐 청도 성명에서 “그는 이 수치스럽고 전례 없는 정치적 기소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소는 내년 미국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실시해 이날 공개한 공화당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54%를 얻었다. 2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17%)보다 37%포인트나 앞서는 등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기소에도 불구하고 지지층 결집이 확고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과 맞붙을 본선에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NYT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은 43%로 동률이었다. 하지만 선거운동과 재판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잘못이 추가 확인될 경우 무당파와 중도층이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한 것을 입막음하기 위해 돈을 지급한 혐의와 대통령 퇴임 당시 백악관에서 기밀문건을 집으로 가져간 혐의로 기소돼 각각 내년 3월과 5월부터 재판을 받게 된다. 내년 11월 대선 투표일 전까지 계속해서 사법 이슈를 떠안고 선거운동에 나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올해 상반기에 확보한 정치자금 중 법률 비용으로만 이미 4,000만 달러 넘게 썼고, 앞으로도 소송 관련 지출이 늘어나면 선거운동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