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함께 돌아온 '한강 치맥'… 금주구역 지정 논란 다시 불붙을까

입력
2023.08.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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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뒤 폭염 이어지며 한강공원 발길 늘어
일대 쓰레기, 취객 고성 등 해묵은 문제 여전
각 지자체, 도심 내 공원·관광지 '금주' 추세
"음주금지 앞서 시민 공감대 형성 과정 필요"

2019년 이후 4년 만에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이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상향된 1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엔 무더위를 식히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도심 강변에서 술 한잔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돗자리 위엔 푸드트럭과 편의점 등에서 사온 술과 음식이 풍성했다. 취하긴 이른 시간인데도 소리를 지르거나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취객도 여럿 보였다. 외국인들이 버리고 간 소주와 맥주병이 나뒹구는 모습을 본 한 시민은 “지저분하게 이게 뭐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긴 장마 뒤 폭염과 함께 ‘한강 치맥(치킨과 맥주)’도 돌아왔다. 시민들의 한강공원 방문이 늘면서 서울시가 여론 미성숙 등을 이유로 추진을 보류했던 ‘한강공원 금주구역’ 지정과 관련한 논란도 자연스럽게 다시 점화할 전망이다.

"한강 치맥은 문화" vs "시민 휴식처"

서울시는 지난 2월 한강을 금주구역에 포함하겠단 내용의 ‘건강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가 “시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심사를 보류했고, 시도 “당장 한강공원을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은 없다”고 물러서며 해당 사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한강공원 금주구역 지정은 2021년 4월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손정민씨 사고가 계기가 됐다. 음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단 의견이 높아진 것이다. 서울시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도 한강공원 일대 음주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엔 야간에 한정됐고, 감염 방지를 위한 일시적인 조치였다.

한강공원 금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날 공원을 찾은 이들 중 상당수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소영(30)씨는 “’한강 치맥’은 이미 하나의 문화”라며 “작은 행복마저 앗아가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만취하지 않게 스스로 조절하고, 정리도 깔끔하게 하면 아무 문제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휴가를 맞아 서울에 온 일본인 하루카(23)씨도 “도쿄 스미다강에서도 맥주를 마실 수 있지만, 한강이 다른 이유는 역시 한국 드라마”라며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이곳에서 즐기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해마다 반복되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의나루역 인근에 사는 송모(68)씨는 “쓰레기 악취가 아파트까지 풍길 때가 있다”며 “시민 휴식처가 술에 찌들어 있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면 금지보단 보다 유연한 규제 적용 등 대안을 제시하잔 목소리도 나온다. 강수희(60)씨는 “음주 시간을 정하고, 지자체가 공원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도심 내 공원 금주구역 지정 늘어

도심 내 공원이나 주요 관광지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광안리 인근 ‘민락수변공원’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광안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회 한 접시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러 온 이들로 늘 불야성을 이뤘다. 한때 ‘민락술변’ ‘민락술판공원’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금주구역 지정 한 달째, 인근 상인들은 매출 하락 등을 이유로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거리가 깨끗해졌다며 반기는 시민도 많다. 대구 북구는 이달부터 함지ㆍ태전ㆍ구암ㆍ운암공원 등 8개 공원을, 서울 중랑구는 지난달 14일 7호선 면목역 광장을 금연ㆍ금주구역으로 지정하고, 6개월 계도를 거쳐 내년 1월부터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공원이나 명소 등에서 음주를 금지할 만한 명분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환경시민단체인 서울환경연합 김동연 정책국장은 “각 지자체가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 사용 자제나 금지 등 행정시스템 보완과 성숙한 시민 의식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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