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동해안은 약 690㎞(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 기준)에 달한다. 이 해안을 따라 최남단 부산에서 최북단 고성까지 12개 시ㆍ군이 이어진다. 그 12개 지자체 중간에 위치한 삼척은 지리적으로나 교통망으로나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시멘트와 석탄 등 광물자원이 풍부해 한때는 인구 30만에 육박했다. 하지만 현재는 6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국 일반시ㆍ행정시 중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시다. 광업 쇠퇴와 태백시 분리 등이 그 원인이다. 전체 인구 중 20ㆍ30대 청년 인구가 9,000명 선으로 비교적 높은 비율을 유지하는 젊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삼척 사람들은 “강원대학교 삼척과 도계 캠퍼스 학생들에게 주소지 이전 혜택을 주며 단기적으로 늘려 놓은 부분이 많아 허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들 학생 중 졸업 후 삼척에 정착하려는 이가 늘어난다면, 삼척은 희망의 도시가 될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대도시의 바쁜 생활에 지쳐 삼척에 정착한 청년들은 삼척을 선택한 이유로 ‘여유로운 생활 리듬’과 ‘경쟁 스트레스 프리’를 꼽았다. 여행 작가이자, 삼척을 매력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게 할 꿈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있는 청년 활동가 김성현씨는 “전국 최저인 인구밀도가 위기인지 기회인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삼척은 청년이 필요한데, 청년은 다 떠나가니 날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며 “청년 지원 사업 신청자 10명을 모집하는 공고를 내도 5명밖에 지원하지 않는 삼척이야말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다. 삼척은 아름다운 해변뿐 아니라, 미개발 석회동굴과 계곡, 과거 고도성장기를 뒷받침하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가는 탄광촌 등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 동해선 철도가 부산으로 연결되고, 곧이어 강릉까지 이어지면 서울ㆍ부산이 모두 1시간대에 오고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삼척 청년들은 삼척만의 고유성을 찾고 홍보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척시 역시 관광산업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독창성을 구축하기 위한 모험보다는 다른 시ㆍ도의 성공사례 따라 하기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척시가 성공사례로 자랑하는 삼척 중앙시장 내 청년몰은 삼척의 대형 리조트를 찾은 외지인들도 맛집 순례로 찾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주로 제공하는 음식은 수제버거, 이탈리아 음식, 해물짬뽕 등 전국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구성돼 있다. 삼척 사람들 솔 푸드인 미역장국이나 가자미식해는 찾아볼 수 없다. 금광 폐광지로 오랫동안 버려졌다가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될 만큼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난 대만 지우펀처럼, 도계읍도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이지만 좀처럼 회생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삼척을 찾는 관광객 중 70대 남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강릉에 가장 비중이 높은 관광객이 10대 남성인 것과 비교하면, 삼척이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삼척의 부활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상력과 추진력이다. 이를 위해 관광산업 발전 방안 수립부터 삼척 청년들에게 과감하게 위임하는 것은 어떨까. 삼척에 정착하려는 청년들만큼 삼척의 지속적 발전을 절실하게 바라는 적임자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발전소 등 대기업에 근무하는 청년이든, 공부를 위해 이곳에 사는 대학생이든 삼척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그대로 정착하게 하고, 한발 더 나아가 외지 청년들도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원하는 생활환경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삼척의 객관적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해 강원도와 수도권에서 삼척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동해 속초 과천의 안심영역과 만족영역 지수를 삼척과 비교했다. 이 지수는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서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포함했다. 안심영역 지수를 비교하면 삼척이 비교 도시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은 별로 없었다. 일자리 부문에서 서울에 크게 뒤질 뿐 동해 속초보다는 오히려 소폭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은 서울보다 우수했고, 의료도 대등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긴밀한 요소들을 비교한 만족영역에서는 삼척의 부족한 점이 보인다. 특히 스타벅스와 올리브영 같은 생활 어메니티(amenity)가 서울 수도권은 물론 속초 동해보다 크게 부족했다.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도 단 한 곳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삼척은 관광객도 삼척 청년들도 놀고 즐기기 애매한 도시이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지역전략은 변화된 산업구조와 현재 상황 속에서 ‘가고 싶은 삼척’과 ‘살고 싶은 삼척’, 이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두 가지 환경 조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결핍 요소를 채워가는 것에서부터 지역의 관심과 지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척이 690㎞ 동해안에 줄지어 있는 12개 시ㆍ군 중에서 돋보이는 매력을 지닌 관광지로 거듭나고, 이를 통해 전국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젊은 도시로 변신하려면 안전 위주의 ‘따라 하기’ 전략으로는 희망이 없다. 긴 동해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삼척만의 고유성을 찾아 개발해야 하고, 이를 추진할 가장 강력한 힘은 삼척의 젊은이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료정리: 김예진, 전종석(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