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수도권 빌라 전세 시세를 보면 달라진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기본 500만 원·1,000만 원 단위로 끊어 '1억1,500만 원' '1억2,000만 원' 식으로 정해지던 전세 시세를 '2억2,040만 원'처럼 10만 원·100만 원 단위로 매긴 매물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세보증 기준을 강화한 지 한 달여 만에 생긴 변화로 정책에 대한 시장 반발도 크다.
한국일보가 최근 일주일간 서울·수도권 빌라 전세 매물을 분석했더니, 전셋값 끝자리가 10만 원·100만 원 단위로 정해진 매물이 수두룩했다. 이는 정부가 3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5월 1일부터 전세보증 기준을 대폭 강화한 뒤 나타난 현상이란 게 중개업계 설명이다.
기준 강화란 정부가 빌라를 고리로 한 전세사기 근절을 위해 전세보증 가입 기준선을 '공시가ⅹ140%'에서 '공시가ⅹ126%'로 낮춘 걸 가리킨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정부의 전세보증이 절대적이라 보증 대상에서 제외되면 세입자를 들이기 어렵다. 결국 집주인들이 새 기준에 전셋값을 최대로 맞추다 보니 끝자리가 '10만 원' 단위까지 낮아졌다는 것이다.
전세사기가 심했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이런 매물이 특히 많다. 까치산역 인근 한 중개업소엔 최근 A빌라가 2억3,680만 원에 전세 매물로 등록됐다. 이 빌라의 올해 공시가격은 1억8,800만 원. 전세보증 기준선(2억3,688만 원)에 딱 맞춰 시세를 매겼다.
중개업소 대표에게 전세 시세가 통상 500만 원 단위인 점을 내세워 168만 원을 깎아 2억3,500만 원에 해 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올해 공시가 하락과 전세보증 기준 강화로 집주인이 전셋값을 5,000만 원 넘게 낮춘 상황에서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고려하면 10만 원도 깎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같다. '공시가ⅹ126%'가 시장 시세로 굳어진 모양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빌라 전셋값은 3억600만 원으로 '공시가ⅹ126%' 값(3억618만 원)과 같았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전용 49㎡ 빌라 역시 올해 공시가(1억1,100만 원)에 126%를 곱한 1억3,900만 원에 매물이 올라왔다.
시장에선 집주인들 반발이 상당하다. 정부가 시장 가격과 괴리가 큰 공시가를 전세보증 1순위 기준으로 활용하게 한 결과, 전세 시세를 인위적으로 더 크게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 18% 하락했는데, 빌라 전셋값도 이 수준만큼 내려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임대사업자 김모씨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KB시세를 따르면서 빌라만 시세 현실화율이 낮은 공시가를 기준으로 해 빌라 시세를 강제로 하락시켰다"며 "이러면 누가 빌라 전세를 내놓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회복 중인 아파트 전세시장과 달리 빌라 전세 매물은 급감하는 추세다. 올 상반기(1~6월) 서울의 빌라 전세 비중은 53.4%로 조사 이래 역대 최저를 찍었다.
여당에서도 제도 개선 목소리가 나온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전세보증에 가입된 주택의 절반가량이 강화한 기준에선 탈락할 걸로 추산되는데 청년·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빌라가 60%로 가장 높다"며 "일률적인 기준 강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