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서이초 교사의 유족들이 경찰과 학교 측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조작·은폐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극단적 선택의 배경이 된 학부모 악성 민원 등 학교 문제를 감춘 채 우울증 등 개인 신상 문제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서이초 교사가 이번 달에만 학교 측에 3건이나 상담을 요청하는 등 학부모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자료도 최근 확인됐다.
서이초 교사 A씨의 유족들은 2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대응에 문제를 제기했다. 유족 측은 "왜 경찰은 학교에서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 신상 문제로 방향을 몰아 언론사 등에 흘렸는가"라면서 "(경찰은) 심지어 유족들에게도 개인 신상 문제로 몰아 유족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말했다. 빈소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부랴부랴 장례를 치르는 상황에서 A씨의 부모가 경찰의 말에 심리적으로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A씨가 숨진 다음날인 19일 언론에 "가족과 동료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지만 A씨가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볼 만한 정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사망 이틀째인 20일 한 온라인매체는 "A씨의 일기장을 입수했다"며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우울증, 남자친구와의 결별 등 개인적인 문제가 A씨 사망의 주요 원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A씨 집에서 발견된 일기장은 경찰이 가지고 있었다.
유족 측은 서이초가 A씨 사망 관련 입장문에서 이른 바 '연필 사건'을 누락시킨 것도 지적했다. 서이초는 20일 A씨 사망 관련 의혹이 온라인에서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이날 오전 낸 1차 입장문에서 6가지 사실을 정정했다. 서이초는 이 입장문에서 지난 12일 A씨 반의 한 학생이 연필로 다른 학생의 이마를 긁은 '연필 사건'에 대해 "학생 간 사안은 학교의 지원 하에 발생 다음날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시간여 뒤에 다시 나온 최종 입장문에서는 이 내용이 삭제됐다.
유족 측은 "학교는 20일 두 번에 걸쳐 입장문을 내면서 두 번째 입장문에서는 왜 핵심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연필 사건'을 누락시켰는가"라며 "경찰은 사건 본질을 조작했고 학교에서는 사건의 핵심 내용을 은폐했다.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관계기관에서는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필 사건'으로 A씨가 학교 측과 두 차례나 상담한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사건 다음날 학교 측에 "연필 사건이 잘 해결됐다고 안도했으나, 사건 관련 학부모가 개인 번호로 여러 번 전화해서 놀랐고 소름 끼쳤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상담에서도 A씨는 "학생과 학부모가 자꾸 선생님 잘못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 들으니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고 가스라이팅으로 느껴진다"며 괴로워했다. A씨는 올해에만 학교에 8차례나 상담을 신청했다.
유족 측은 "이제 상담 내용 등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