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오후 3시 반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한 길거리에서 만난 회사원 제이슨 코헨(47)이 그의 딸 테미나(17)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오전 9시 네바다주 르노시 집에서 출발해 다섯 시간을 차로 달려왔다고 했다. 이날 샌타클래라 곳곳의 도로가 통제된 탓에 주차한 곳에서부터 목적지까지 뙤약볕 아래를 30분 가까이 걸으면서도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다. 코헨은 "우리는 이날만 기다려왔다"며 "시간과 돈이 적잖게 들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이날 부녀가 샌타클래라를 찾은 건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때문이었다. 이들은 운 좋게 이번 공연 티켓을 구한 5만8,000여 명 중 하나다. 공연 시작(오후 6시 30분)을 세 시간이나 앞두고 왔는데도 공연장 앞은 각지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팬들로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다. 관객들의 나이대는 초등학생부터 머리색 희끗한 중장년까지 다양했고 혼자 온 사람뿐 아니라 3대가 함께 온 대가족도 있었다.
공연장 앞에서 만난 마리엘 리(21)는 반짝거리는 미니 드레스와 스위프트의 상징인 빨간색 립스틱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로 두 시간 거리인 새크라멘토시에 거주한다는 그는 "27, 28일 샌타클래라 공연을 보고 다음 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공연까지 본 뒤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총 3회에 이르는 공연 티켓과 숙박, 교통비 등에 2,000달러(약 255만 원) 정도 쓸 계획을 하고 있다는 리는 "나에게도 물론 큰돈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투어가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를 포함하는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을 이르는 말)에 '슈퍼볼' 급 경제 효과를 가져왔다." 28일 CBS 뉴스가 스위프트 공연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스위프트 공연의 인기가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미국 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에 버금간다는 뜻이다. 러셀 핸콕 조인트벤처스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는 "정식 티켓 판매 수익만으로 1,500만 달러(약 190억 원)를 벌어들일 것"이라며 "호텔, 레스토랑, 교통과 경찰력 동원을 포함한 도시 행정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줄 전망"이라고 했다.
스위프트는 3월 미국 20여 개 도시를 도는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8월 초 LA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되는데 예상 수익은 총 10억 달러(약 1조2,780억 원). 역대 미국 콘서트 사상 최대 기록이다. 지금까지 스위프트 공연이 열린 도시들은 빠짐없이 지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스위프트 효과'를 경험했다. 미국에선 스위프트와 그의 팬덤의 경제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스위프트노믹스'(테일러노믹스로도 불림)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샌타클래라 역시 스위프트 공연이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눈에 띄는' 변화들이 나타났다. 예매 시작 당시 100달러 선이었던 티켓 한 장의 최저 가격은 공연 이틀 전 1,000달러대로 뛰어 올라 있었다. 공연장 일대 식당, 술집에선 스위프트 공연을 기념하는 특별 메뉴와 칵테일이 메뉴판에 등장했다. 평소 200달러 정도에 묵을 수 있는 공연장 주변 호텔들의 1박 가격은 693~972달러까지 치솟았고 이마저도 공연 당일엔 예약이 불가능했다. 샌타클래라 방문 정보를 제공하는 디스커버리 샌타클래라 측은 "공연이 열린 경기장은 2015년 슈퍼볼을 포함해 수많은 대형 행사를 개최했지만 주변 숙소 예약이 매진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역언론 머큐리뉴스에 말했다.
일대 식당들 역시 공연 당일 점심, 저녁 모두 자리가 있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27일 찾은 한 피자 가게 점원은 "한 달 전부터 이날 자리가 다 찬 것 같다"며 "공연 시간에도 티켓을 구하지 못해 멀리서나마 분위기를 느끼려는 이들이 모든 자리를 예약했다"고 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지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달 초열린 스위프트 공연은 시에 9,000만 달러(약 1,150억 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다 준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중순 스위프트가 찾았던 콜로라도주 덴버의 정책 싱크탱크 상식연구소는 관객들이 티켓과 숙박 등 지역 방문 경비로 인당 평균 1,327달러(약 169만 원)를 썼으며 콜로라도 국내총생산(GDP)에 약 1억4,000만 달러(약 1,790억 원)를 이바지했다고 추산했다. 22, 23일 이틀 동안 스위프트 공연이 열렸던 워싱턴주 시애틀의 경우 경제적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규모 2.3 지진과 맞먹는 진동이 감지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스위프트의 경제적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연준이 12일 발표한 경제동향보고서 베이지북에는 "스위프트 공연이 열렸던 5월 필라델피아주의 호텔 수익이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가장 높았다"는 지역 관계자의 언급이 실렸다.
이 같은 스위프트 효과는 스위프트의 역대급 인기에 더해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공연 수요가 올 들어 폭발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스위프트는 빌보드 200 차트 최다 1위 등 최고·최초 기록을 다수 보유해 '신기록의 여왕'으로 불리는 세계적 가수다. 지난해 발매한 정규 10집은 수록곡 10곡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10위를 휩쓰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한편에선 막강한 관중 동원력을 가진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크다. 이 현상을 일컬어 투어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투어플레이션'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5월 스웨덴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시장의 예상(9.2%)을 웃도는 9.7%의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같은 달 스톡홀름에서 열린 가수 비욘세의 공연이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가디언은 덴마크 은행 단스케방크의 보고서를 인용해 "비욘세 공연을 보기 위해 스톡홀름을 찾은 관광객들 때문에 호텔, 식당 등 가격이 전월 대비 약 3.3% 올랐다"며 "이번 콘서트가 물가 상승률에 약 0.2%포인트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스위프트는 다음 주 LA 공연을 끝으로 미국을 떠나 남미, 유럽, 아시아 각국을 도는 월드투어를 시작한다. 미국을 뒤흔든 스위프트 효과가 이제 세계 각국으로 확산할 것이란 얘기다. 미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내년 2월 공연이 예정된 호주 시드니의 경우 200달러 미만인 호텔이 이미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한국은 이번 월드투어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