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째 아들(32)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박모(61)씨는 이번에 발표된 세제개편안을 보고 “노후가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은 부모세대에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1억5,000만 원을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3 세법개정안에서 눈길을 끌었던 ‘혼인자금 증여 공제 확대’ 혜택이 금융자산 보유 가구 중 상위 13%에게만 집중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년들의 결혼 비용 부담을 일부 덜어줘 저출생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의 ‘2022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MDIS)’ 분석자료를 보면, 1억5,000만 원으로 확대되는 혼인자금 증여 공제 혜택은 금융자산을 보유한 5060세대 가운데 상위 13.2%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행 제도로 증여세를 낼 수 있는 가구를 기초로 분석했다. 의원실은 현재 증여세 대상은 ‘자녀 1명 당 금융자산 1억 원’이 넘는 수준이라고 봤다. 전세 자금 등의 용도로 지원하는 금액 중 5,000만 원을 초과해야 증여세 대상인데, 여기에 혼수 및 결혼식 비용 등 애초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지원금으로 평균 5,073만 원(최근 2년 평균 적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 정도의 증여가 가능한 가구를 살펴본 결과,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가구주(50, 60대)의 평균 자녀수 2.1명을 적용, 금융자산으로 2억 원 이상 보유한 가구로 추려졌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가구가 상위 13.2%다. 나머지 86.8%는 애초에 자녀 결혼에 증여세를 낼 만큼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번 세제개편안 혜택에서 제외된다는 게 의원실의 결론이다.
더욱이 결혼자금 공제 확대 조치로 자녀 1인당 사실상 2억 원까지 증여세 없이 증여가 가능해지는데, 자녀 2명 모두에 총 4억 원 이상을 증여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구는 상위 4.5%뿐이었다.
혼인자금 증여 공제 확대로 인해 ‘부모찬스’를 이용한 부의 대물림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정부는 ‘저출생 해결용 감세’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관철시켰다. 부모로부터 받는 결혼 자금이 많아지면 혼인을 유도할 수 있고, 혼인 건수 증가는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에서다.
전문가들은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산층 이상이 혜택을 보는 정책인데, 이들이 혜택을 보는 만큼 세수는 줄어든다"며 “기존 한도인 5,000만 원조차 줄 수 없는 사람들은 세제 혜택 보는 게 전혀 없는 데다, 오히려 부모찬스 유무로 결혼 후 출발선상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증여세는 액수가 클수록 더 많이 내는 누진구조라는 점에서, 이번 혼인자금 증여 공제 확대는 '부자감세'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증여할 자산이 많을수록 감세 혜택도 비례해 커지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에 곤란을 겪는 하위 90%를 배제하고, 결혼 준비에 경제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며 “결혼 지원 정책이 아닌, 결혼의 탈을 쓴 부의 대물림 정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