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의뢰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부동산 중개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최근 매매를 중개한 건물에서 임차인 1명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상 계약갱신요구권이 10년까지 보장되는 점을 악용하여 매수인에게 합의금으로 20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차인은 보증금 1억 원, 월세 500만 원에 ‘일반 사무실’ 용도로 임차한 지 1년밖에 안 됐고, 매수인은 임차인이 주장하는 시설비 1억5,000만 원의 2배인 3억 원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차인은 계약갱신요구권을 주장하며 버틸 경우 매수인에게 매달 막대한 금융비용 등 사업 손실이 난다는 점을 알게 된 후 20억 원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20억 원보다 더 올릴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한다. 법을 잘 아는 임차인이었다.
다른 임차인들은 원만히 합의하고 퇴거했는데 이 임차인 1명 때문에 매수인은 매달 막대한 이자를 내면서 사업도 전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의뢰인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가임대차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 제정 시에는 기간을 5년으로 정했으나, 5년으로는 임차인이 영업을 안정적으로 계속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2018년 10월 16일 법률 제15791호로 기간을 10년으로 변경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는 계약갱신요구권의 입법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상가건물을 임차할 때 임차인이 고액의 시설투자 비용이나 권리금 등을 지출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상가임대차법은 임차인에게 일정 기간 계약기간을 보장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권리금이나 시설투자비 등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1년 12월 29일 제정 당시부터 임차인에게 전체 임대차 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다”(헌법재판소 2014년 8월 28일 자 2013헌바76 결정). 즉, 임차인의 ‘투하자본 회수’를 확보하기 위한 여러 권리 보호조치 중 ‘임차권의 기간 보장’을 입법화한 것이다.
한편, 상가임대차법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에 대응하여 임대인에게는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3기에 해당하는 차임 연체 사실이 있거나, 무단 전대(轉貸)한 경우 등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했거나, 임대인이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거나, 건물이 노후 ‧ 훼손되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서 철거 또는 재건축이 필요한 경우 등이다. 그리고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에도 임대인은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법 제10조 제1항).
따라서 위 사례에서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매수인은 임차인과 서로 합의하여 “상당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고, 상당한 보상은 “임차인이 그동안 이루어 놓은 영업권 및 설비 등의 손실 등 임차인이 실제로 입은 손해에 상응하는 수준”을 의미하는데(상가임대차법 온라인 주석서 참조), 위 사례 임차인은 상당한 보상으로써 시설비의 13배 또는 33년 치 월세에 해당하는 20억 원 또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위 사례는 사회적 ‧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민법에 대한 특례로 제정된 상가임대차법의 입법 취지가 몰각된 전형적 사례다. 임차인들이 사회적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약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축소시키는 근거로 활용될 것 같아서 씁쓸하고 안타깝다. 위 사례에서 언급된 악의적 임차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방법이 있을지, 형법상 부당이득죄 또는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