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웹툰작가 주호민씨가 발달장애 아들이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특수교사를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권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씨를 비난하는 쪽은 특히 그가 학대 사실을 증명하려 가방에 녹음기를 넣은 행위를 문제 삼는다. 이런 ‘몰래 녹음’은 재판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될까. 법적 쟁점을 따져봤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씨 사례 같은 몰래 녹음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흔히 물적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제3자 녹음이 법에 저촉되는 만큼 증거로 쓰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항변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근거한다. 해당 법엔 ‘타인 간 미공개 대화 녹음 및 청취’를 금지하면서, 이런 식으로 취득한 내용도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인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대화라면 녹음할 수도,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 때론 형사처벌 대상까지 된다.
다만 형사재판에선 ‘공익성’이 많이 반영된다. 우리 사법시스템은 통비법 위반에 따른 증거능력 상실 여부를, 재판부가 공익을 기준으로 재량껏 판단하게끔 열어두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도 “사생활 영역에 관계된 모든 증거의 제출이 곧바로 금지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과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을 비교 형량해 그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몰래 녹음이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증거 채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아동학대 사건에서 두드러진다. 학대를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능력과 책임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아동학대 사건에서 몰래 녹음의 증거능력을 법리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확정된 하급심 판결은 많다. 대부분 판결은 “아동은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상황 표현 능력이 부족해 몰래 녹음 외에 증거를 수집할 방법이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2019년 6월 유죄가 확정된 아동학대 돌보미 사건이 대표적이다. 생후 10개월 된 영아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한 혐의로 돌보미가 기소됐는데, 1심은 통비법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공익적 요구와 비교할 때 녹음이 피고인의 인격권을 현저하게 침해하지 않았다”면서 죄가 있다고 판단했다.
엄마가 4ㆍ7세 두 딸을 학대한 사건에선 “욕설은 통비법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녹취록 중 증거로 필요한 부분은 유형력 행사나 욕설 내지 위협적인 말이 담긴 부분이고, 이는 (통비법이 보호하는) 타인 간의 의사소통 행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씨 아들 재판에서도 녹음의 증거능력 자체는 쟁점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초등학생이, 그것도 장애를 가진 아이가 직접 녹음기를 켜는 등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는 주장은 아동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 우리 법 체계와도 거리가 멀다.
형사법 전문가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 녹음에서 중요한 건 폭언, 욕설 등 소리 자체이지, (대화) 내용의 진실성이 아니다”라며 증거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비쳤다. 또 피해자가 발달장애 아동이라는 점을 거론하면서 “(몰래 녹음은) 공익 필요성이 큰 증거수집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