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나 여행으로 멀리 떠날 때 무엇을 챙기는가? ‘짐’을 꾸린다.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꾸려 놓은 물건이 ‘짐’인데, 과거에는 짐을 머리나 등에 지고 옮겼다. ‘지나 업으나’라는 말이 있다.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처럼 등에 물건을 얹는 일이 ‘지다’이고, 져야 할 무엇이 곧 ‘짐’이다. 이미 말에서 짐의 무게와 버거움이 느껴진다.
단순히 물건만 지는 것은 아니다.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처럼, ‘지다’는 책임이나 의무를 뜻한다. 가장으로서 져야 할 짐, 마음의 오랜 짐 등이 그것이다. 책임을 남에게 떠맡기는 것을 ‘짐을 지운다’고 하는데, 이런 웃어른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만큼 짐은 책임자의 몫이다. 빚을 갚을 의무도 ‘지다’라고 한다. 등에 질 물건, 책임과 빚 등 ‘지다’에는 어쩔 수 없이 온갖 부담이 다 실려 있다. 심지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한탄에서는 사람이 ‘수고를 더하는 짐’으로 비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모든 책임이 끝났을 때를 ‘짐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짐’이란 힘겹고 버겁기만 한 것일까? 말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짐은 한 사람이 지어 한 번에 나를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이다. 기계나 도구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던 때, 짐이란 사람이 딱 질 만큼만 꾸려지는 것이었다. ‘나무를 한 짐씩 지어 날랐다’처럼 말이다. 물론 저울로 재듯 똑같은 무게는 아니겠지만,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맞는 짐으로 꾸려지기 마련이다. 수준이나 정도 등이 똑같지 못한 상황을 두고 이르는 ‘짐이 기울다’도 조상들의 그런 관점을 드러낸다.
삶은 짐을 꾸리고 지는 것의 연속이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짐을 꾸려’ 집을 나서고, 거처를 정할 때 ‘짐을 푼다’. 하던 일을 완전히 그만두려 ‘짐을 싸고’ 스스로의 선택에 ‘짐을 진다.’ 그런데 짐의 무게가 과할 때 그 짐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애초에 사회가 책무를 다하지 못해 개인에게 넘겨진 짐도 있다. 또 짐은 몸의 일부가 아니다. 쉬어야 할 때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등에 진 큰 짐을 내릴 때면 옆 사람이 잠시 붙잡아 주곤 한다. 고통, 슬픔, 걱정 등 마음의 짐은 내려놓는 과정에 이런 도움도 필요하다. 늘 나쁜 ‘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과거형으로 쓰이는 ‘신세를 졌다, 큰 은혜를 졌다’가 그 예이다. 짐의 무게가 신세와 은혜의 무게로 기억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오늘 아침에는 새로운 짐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