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뿔과 코끼리

입력
2023.07.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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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바깥 날씨가 무더워도 실내는 냉방 등으로 온도 차가 많이 나 여름에도 감기에 걸리는 일이 흔하다.

감기는 한자어 ‘感氣’에서 온 것으로, 한자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는 감기를 주로 ‘感冒’(감모)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風邪’(풍사)로 쓰기 때문이다. 감기의 순우리말은 ‘고뿔’이다. 사전에서는 고뿔을 ‘감기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요즘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감기 고뿔도 남을 안 준다’라는 말과 같이 속담으로만 거의 남아 있다.

‘고뿔’은 16세기 문헌에서 ‘곳블’로 나타났으며, 근대 국어 시기에 ‘곳불’이 되었다가 지금의 ‘고뿔’이 되었다. ‘코’의 옛말인 ‘고ㅎ’에 관형격 조사 ‘ㅅ’, ‘불’의 옛말인 ‘블’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즉, 고뿔은 ‘코’와 ‘불’의 합성어이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고, 코가 붉어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코끼리’ 역시 코와 관련 있는 말이다. 당시 코끼리가 우리나라에 없었을 텐데, 코끼리의 옛말인 ‘고키리’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고키리’는 ‘코’의 옛말인 ‘고ㅎ’에 ‘길다’의 ‘길-’, 명사를 만드는 ‘-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로, ‘코가 긴 것’, ‘코가 긴 짐승’이라는 뜻이다. ‘고ㅎ’이 ‘코’가 되면서 ‘코키리’가 되었고, 지금의 ‘코끼리’는 ‘코키리’의 ‘키’가 ‘끼’로 바뀐 것이다.

코끼리는 의미 변화 없이 형태만 변하여 지금까지 쓰이고 있으나 순우리말인 고뿔은 한자어인 감기가 대체하여 거의 쓰이지 않으면서도 ‘코’의 옛말의 잔재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이윤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