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간판' 친강 싹 지우고 입 닫은 중국..."시진핑 체제, 어찌 믿겠나"

입력
2023.07.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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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홈페이지서 기록 삭제...숙청 정황
불륜설보다 중대 비위·권력 투쟁에 무게
정치·외교·경제 민감 시기에 불안정성 노출

해임된 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의 흔적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해임 발표 하루 만에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그의 활동 자료가 전부 삭제됐다. 숙청설이 나돌지만, 해임 이유는 비밀에 부쳐졌다. 중국 매체들은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외교부장으로 복귀하게 됐다는 소식만 짧게 전했을 뿐이다. "친 전 부장의 수상한 퇴장이 중국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홈페이지서 흔적 삭제...숙청에 무게

외교부장은 중국 외교의 간판이다. 친 전 부장 해임 이틀째인 26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외교부장 활동' 정보란은 텅 비어 있었다. '외교부장의 발자취'를 클릭하면 "정보를 업데이트 중"이라는 문구만 뜬다. 이날 정례브리핑에 나선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 역시 친 전 부장이 해임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제공할 정보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했다. 전날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회가 인사 발표를 하자마자 '친강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고위 정치인 흔적 지우기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숙청'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닐 토머스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 연구원은 트위터에서 "이전 외교부장들의 기록은 남아 있지만 친강의 기록만 삭제된 것은 그가 숙청됐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친 전 부장 증발을 둘러싸고 오르내린 각종 루머도 재조명됐다. 그는 지난달 25일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그사이 건강 이상설, 홍콩 유명 아나운서와의 불륜으로 문책당했다는 설, 내부 권력 암투에서 밀려났다는 설, 주미국 대사 시절 군사기밀을 미국에 유출해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설 등이 돌았다.

외교가에선 불륜 때문에 숙청당하진 않았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상류층이나 권부에서 불륜 등 사생활을 문제 삼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더구나 친 전 부장은 올해 3월 시진핑 3기 체제 출범과 동시에 발탁된 '시진핑 키드'다.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2014년 숙청당했을 당시에도 불륜으로 인한 문책설이 파다했지만,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적 그룹인 '상하이방'의 실력자였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이에 친 전 부장이 중대 비위나 실책을 저질렀거나 내부 권력 다툼에서 희생됐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친 전 부장이 미국과 소통을 주로 담당하면서 "외교 사령탑인 왕이 위원과 그보다 급이 낮은 친 전 부장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정확한 이유를 끝까지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국무위원과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등 친 전 부장의 다른 직책은 살려 뒀다. 정치적 부활 여지를 남겨둔 조치일 수 있지만 정상적인 활동은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외 신뢰도 회복해야 할 시기 불안정성만 드러냈다"

이번 사건은 시 주석의 리더십과 중국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혔다. 중국이 경기 반등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호소하고, 미중관계의 회복을 도모하는 시기에 악성 악재가 터진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대외 신뢰도를 회복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물론이고 중국과 최고위급 대화를 재개하려는 미국의 노력 모두를 꼬이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안 총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중국 정치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으며 예측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제멋대로일 수도 있다는 점이 재차 증명됐다"고 진단했다. 토머스 연구원은 "비밀 정치에 중독된 중국 공산당의 외부 세계와의 소통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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