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고요에 빠져들고 싶은 하루

입력
2023.07.26 22:00
27면

출퇴근 시 거의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나는 호기심이 꽤 많아 버스든 지하철이든 이용하면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행동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쳐다보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휴대폰에만 열중해 특별히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한 세기가 지난 것도 아닌 불과 몇 년 전인데도 휴대폰이 없을 때는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에게 이동 시간이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대단히 시끄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을 때는 대부분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 생각 속에는 어제의 일, 오늘의 일, 미래의 일이 모두 포함돼 있다. 또 일들 속에는 기쁨, 후회, 다짐, 계획, 걱정이 가득 차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수시로 시공간을 뛰어넘기도 한다. 10년 전의 나를 칭찬하기도 하고 1시간 전의 나를 책망하기도 하며 1개월 전의 내가 했던 일을 참고해서 내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이것도 다르게 생각하면 참 시끄러운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시끄럽게 세상에 나온 우리는 숙명적으로 시끄러운 세상을 산다. 그래서 삶을 하루하루 산다는 건 내 마음의 고요함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외부와 내부의 시끄러움을 조용히 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드는 여정이랄까. 타인과 함께하며 이야기하고 발산하는 즐거움과 기쁨도 있겠지만 고독과 고요함은 그것만의 역할이 있다. 궁극적으로 우린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 아니었던가. 죽음,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요함. 그 고요함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현재가 더욱 시끄러운지도.

가끔 퇴근할 때 만난 버스 기사님을 오늘은 아침에 만났다. 이 기사님은 유독 승객들에게 "어서 오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하는 분이다. 이런 분이 드물기 때문에 기억을 하는데 오늘은 한 할머니가 탑승하자 큰 소리로, "할머니께 자리 양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마법처럼 생기는 빈 좌석. 기사님의 외침은 컸지만 시끄럽지 않았다. 그건 그의 신념이랄지, 생각에서 나온 소리라 오히려 고요한 힘이 있었다. 북적북적 혼잡한 출근 버스 안에서도 그 고요함은 통했다.

죽어서야 내면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억울한 일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미리 죽음 비슷한 것이라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건 그 때문이다. 미리 유서를 써보는 것, 다른 사람의 유언장이나 묘비 문구를 읽어보는 것, 그리고 관에 들어가서 죽음 체험을 하는 것 등이 그런 의미에서 유효하다. 배우 존 웨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밤 12시에 아주 깨끗한 상태로 우리에게 온다. 내일은 우리가 어제로부터 무언가 배웠기를 바란다.'(Tomorrow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comes into us at midnight very clean. It hopes we’ve learned something from yesterday.)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나는 내 내면의 어떤 고요함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인지. 어떤 걸 위해 이렇게 살았는지. 내일이 오면 깨끗하게 또 생각해야겠다. 내가 오늘 죽는다면 어떤 고요함을 내보일 수 있을지.


박훌륭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