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한국전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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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이 체결한 수호통상조약엔 ‘다른 나라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 서로 돕는다’는 조항이 맨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70년 가까이 이 조항은 지켜진 적이 없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 때도, 3ㆍ1 운동 당시에도 미국은 모른 척했다. 1950년 초 미국 극동방위선이 한반도가 제외된 채 발표(애치슨라인)된 건 새삼스러울 게 아니었다.

□북한군의 침공 당시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이 그동안의 한반도 불개입 방침을 깨고 파병을 지시한 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무력을 사용한 세력 확장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공산주의는 미국에도 위협이었다. 미 8군 사령관과 극동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매슈 리지웨이 장군은 당시 미국의 목표가 침략을 격퇴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며 전쟁이 3차 대전으로 확대되는 걸 막는 것이었다고 저서 '리지웨이의 한국전쟁'에서 강조했다. 미국에 한국전쟁은 철저히 ‘제한전’이었다.

□1950년 말 중국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을 때 만주 폭격이나 원자폭탄 투하 등을 포함한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보류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한국 일각에서 원하던 ‘완전한 승리’는 미국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전선이 교착되며 시작된 정전협상은 2년여를 끌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됐다.

□리지웨이 장군은 한국전쟁의 가장 큰 실책으로 전략을 세울 때 적의 능력에 집중하지 않고 적의 의도만 읽으려 했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은 한국전쟁 직전 북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서도 무시했고 중국군의 개입 위협도 과소평가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미국은 교훈을 얻어 변했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경계하는 것도 중국의 군사적 능력을 직시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다. 북한의 도발은 계속 이어지고 핵 무력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능력을 간과하거나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느냐’라는 낙관론이 적잖다. 미국이 다시 '한반도 불개입'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정전 70년, 한국전쟁을 가장 잘 아는 장군의 징비록이 예사롭지 않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