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안의 압수수색을 받았던 미국 컨설팅 기업이 한국 기업 의뢰에 따라 '반도체 시장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 컨설팅 업체에 대한 중국의 느닷없는 수사 착수 배경에 한국 기업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공안의 급습 이후, 미국 컨설팅 기업의 일감이 고갈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 4월 상하이 사무소가 압수수색을 받았던 미국의 대형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베인)가 중국 사업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FT에 따르면, 베인은 중국 내 특정 사업의 잠재적 시장 규모 평가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여기에 참여할 중국 국영기업 출신 전문가를 또 다른 미국 컨설팅 업체 '캡비전'을 통해 고용했는데, 해당 프로젝트가 '한국 기업의 반도체 관련 프로젝트'였다고 FT는 전했다. 신문은 관계자 4명의 발언을 인용해 "캡비전을 통해 고용된 전문가가 베인 측에 전달한 민감한 정보에 대해 중국 공안이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수사당국은 최근 컨설팅 업체들을 상대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4월 베인 상하이 사무소에 이어, 5월에는 캡비전의 상하이·베이징·쑤저우·선전 사무실도 중국 공안의 급습을 받았다. 얼마 후 관영 중국중앙(CC)TV 등 현지 언론들은 "중국 국영기업 직원 한모씨가 캡비전에 매수돼 국가 기밀과 민감한 정보를 제공한 죄로 징역 6년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련의 사건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①미국 컨설팅 기업이 중국 반도체 시장 조사 프로젝트를 위해 국영기업 연구원을 고용했고 ②해당 연구원이 중국 당국에 적발돼 처벌을 받았는데 ③애당초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건 한국 기업이었다. 결국 중국 내 반도체 산업 업황 정보에 접근하려는 한국 기업의 시도를 중국 공안이 저지한 셈이 된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 격화 흐름 속에 한국은 양국 모두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중국이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재에 나섰을 때, 미국은 "한국 기업이 중국 내 마이크론 제품 공백을 메워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에 중국도 "한국 등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한국의 자체적 판단을 촉구했다. 베이징의 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에 사활을 거는 중국으로선 미국 컨설팅 업체가 한국 기업 의뢰를 받아 관련 업계 정보를 파악하려는 행동을 두고 보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FT 보도 내용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수의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은 "베인 등이 중국의 표적이 된 이유가 한국 기업의 의뢰 때문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