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쌓은 가계 '초과 저축' 100조... '부동산 실탄' 쓰일라

입력
2023.07.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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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상환·소비 활용 없이 일단 보유
"금융 안정에 부정적 요인 될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계가 쌓은 '초과 저축(excess saving)'이 1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대부분 대기자금 형태로 보유 중이라 언제든 ‘부동산 투자 실탄’으로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BOK이슈노트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 저축 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2020~2022년 우리나라 가계 부문의 초과 저축 규모는 101조~129조 원 수준이다. 2022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7~6%, 명목 민간 소비의 9.7~12.4% 수준이다. 저축은 소득에서 소비를 뺀 것인데, 이번 분석에선 미국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이 5월 제시한 방법론에 따라 팬데믹 이전 추세를 상회하는 가계저축액을 초과 저축으로 정의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5~2019년 평균 7.1% 수준이던 가계저축률은 2020~2022년 평균 10.7%로 높아졌다. 소득계층별로 고소득층에서 초과 저축이 가장 크게 증가했는데, 견고한 노동시장과 높은 기대인플레이션 등 영향으로 상용직의 정액급여가 임시직보다 높은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 기간 호황을 누린 금융과 정보기술(IT)산업 대기업의 특별급여도 고소득층 초과 저축 증가에 기여했다.

증가 원인을 소득과 소비 요인으로 구분해서 보면 팬데믹 초기인 2021년까지는 소비 감소가, 지난해에는 소득 증가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직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대면 서비스 중심으로 소비가 줄었고, 지난해엔 경기 회복으로 인한 고용 호조, 임금 상승과 함께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소득 증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과 저축은 소비나 부채 상환에 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같은 활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물가와 금리 상승에도 가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되레 높아지는 등 소득 여건이 양호했던 탓에 추가적인 소비 재원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기간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크게 늘어난 건 초과 저축을 빚 갚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일단 그대로 보유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용되지 않은 가계의 초과 저축은 주로 예금, 주식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다 여차하면 투자 재원으로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인 셈이다.

최근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진 만큼 부동산시장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가계 초과 저축이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주택가격 상승, 가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지연 등으로 이어지면 금융 안정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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