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서점을 하냐고 많은 이가 내게 말했다. 그간 해 오던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맞닥뜨린 번아웃이 대부분의 시도를 무력하게 하던 때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한 것은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에세이'들이었다. 에세이는 내가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무엇이든 계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절로 궁금해졌다. 나는 무슨 서점을 하고 싶지? '왜' 해야 하는지 보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하루치의 삶에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할 것. 동시에 결코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 것. 언제가 끝인지 몰라 디데이를 설정해 둘 수 없는 건 삶이라는 달력뿐이다. 남은 날을 셈하며 안심할 생각 말고, 매일을 디데이처럼 살라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p.145
'살아가기'에 '어떻게'를 잃어버린 때, 그것에 나를 다시금 천착하게 한 것은 책이다. 그중에서도 에세이는 내 속에 있던 나도 몰랐던 힘을 되찾게 도왔다. 읽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수많은 삶이 만져지는 이야기들. 갖은 실패를 거듭하고도 계속 실패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읽다 보니 나의 의지가 되살아났다. 그 가운데 여러 번 반복해 읽은 것은 김신지 작가의 책이다. 그의 이야기에 내 삶을, 내 시간을 부단히 포개어 헤아렸다.
"삶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썼느냐일 것이다. (…) 무엇이 되었든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이런 기분, 이런 마음으로 지내는 시간은 아니어야 했다. 삶의 시간표를 새로 짜야 할 때였다." - p.163
뜨거운 낮볕이 내리쬐던 여름, 용기 내어 서점을 오픈했지만 금세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제대로 걸어가지 못하고 멈춰서길 반복할 때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만났다. 그는 비슷하게 생긴 매일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다른 기억과 행복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써오며 '시간은 사라지고 떠난 듯 보여도, 기록하다 보면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문다'고 외쳤다. 그렇게 기록으로 남길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더 나은' 시간으로 만들겠다면서.
"망할까 봐 두려워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을 스스로 '실패'라 부르는 대신, 계속해 보고 싶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좋은 실패, 실은 좋은 경험들을." - p.195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 자신이 충분히 자신이 된 시간의 기록이자 회고록 혹은 스스로를 향한 선언문이다. '나는…'으로 시작할 문장 속 주어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특효인. 나처럼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은 누구도 시키지 않는 삶 속에서, 선택한 일을 잘 해내고자 하는'(203p) 이에게는 보약에 다름없다. 모든 일의 결과가 오롯이 나의 책임이 되고, 평가의 척도 역시 나여야만 하는 삶. 그 삶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책으로 말해준다. 괜찮다고, 계속해도 된다고. 계속 여러 번 실패할 테지만 그래도 계속해도 된다고 다독인다. 등을 쓸어준다.
"산다는 건 용기다. 계속해서 내게 맞는 것을 찾고, 나를 웃게 만들 미래를 선택할 용기. 바꿔야 바뀐다. 걸어야 도착한다. 천천히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도 있다." - p.175
거듭 읽을수록 내가 가진 시간을 나에게 더 나은 시간으로 만들 방법이 무엇일지 들여다보게 된다. 나로서 '충분한' 나로 살기 위해 보다 더 중요한 시간을 챙기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이 자체만으로도 지난달보다 혹은 어제보다 내가 더 선명해진 느낌이 든다. 서툴고 헤매어도 '나를 결국 낙관으로 다가서게'(p.10) 한다. 이 책 덕분에 용케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이했다. 모두에게 이 책 읽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