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온 '수상한 우편물'... 전국 '브러싱 스캠' 주의보

입력
2023.07.24 00:10
나흘 동안 전국 각지에서 2000건 신고
미국은 '수상한 소포' 대응요령 체계적
"우리도 브러싱 스캠 매뉴얼 마련해야"

외국발(發) ‘우편물 주의보’가 발령됐다. 정체 불명의 소포 수천 개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해외 소인이 찍힌 우편물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우리도 정부ㆍ민간 차원의 대응 매뉴얼 마련 및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괴소포와 관련해 접수된 신고는 이날 오후 5시까지 나흘간 전국에서 총 2,058건에 이른다. 경찰은 우편물 정체가 불특정 시민을 상대로 한 테러 목적보다는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판매자가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아무에게나 발송한 뒤 수신자로 가장해 상품 리뷰를 올리는 행위다. 리뷰나 구매가 많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성향에 근거해 온라인 쇼핑몰 판매 실적을 부풀리고 평점을 조작하기 위한 사기나 다름없다.

이미 해외에선 브러싱 스캠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대표 사례가 2020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생한 ‘씨앗 우편물’ 사건이다. 당시 미 켄터키와 버지니아 등 9개 주(州) 1,000여 가구에 중국에서 발송된 씨앗 소포가 배송됐다. 소포는 보석, 장난감 등으로 포장돼 있었지만 내용물은 나팔꽃, 히비스커스 등 16종의 식물 씨앗이었다. 미 당국은 “유해 성분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브러싱 스캠으로 결론 내렸다. 중국도 2019년 브러싱 스캠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마련했을 정도로 해당 수법이 만연한 상황이다.

이번 우리 사례도 유사하다. 소포 겉면에 배송 물품을 의류, 자외선차단제 등으로 적었지만 실제 내용물은 대체로 없고, 반송이 불가능하도록 발송 주소가 사서함인 점으로 미뤄 브러싱 스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21일 대전에서 발견된 우편물 중 일부는 2020년 미국에 발송된 씨앗 소포와 같은 주소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발 가능성이 큰 만큼 국민 불안 해소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미국의 경우 2001년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로 5명이 숨진 후 편지ㆍ소포 등에 대한 대응 요령이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다.

미 우편공사 검역국(USPIS)은 내용물이 의심되는 소포를 받았을 때 △맨손으로 만지거나 냄새를 맡지 말 것 △즉시 우편물 격리하고 안전거리 유지 △접촉했을 경우 온수와 비누로 손 세척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대피 등의 대응책을 안내하고 있다. 브러싱 스캠 의심 건도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바꾸고 해당 온라인 쇼핑몰에 즉시 연락하라”고 권고한다. 아마존, 이베이 등 주요 온라인플랫폼 업체들 역시 자사 홈페이지에 브러싱 스캠 대처 방법을 소개하고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정보원이 제작ㆍ배포한 ‘테러의심 우편물ㆍ택배 식별 및 대응요령’만 있을 뿐, 브러싱 스캠에 관한 매뉴얼은 전무하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문하지 않은 택배를 받으면 향후 분쟁 소지를 막기 위해 미개봉 상태로 두거나 버리지 않는 게 좋다”며 “발신자가 명확할 경우 해당 업체에 알리는 등 객관적 증빙 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과 교수도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의 금융범죄도 개인정보 유출에서 시작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