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부터 받고 싶은데…" 한국 위기임산부는 첫 단계부터 난관

입력
2023.07.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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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놓친 아이들: ②산모만의 책임 아니다]
상담기관 없어 나 홀로 고민… 지원책도 몰라 '좌절'
전문가들 "상담부터 지원책 연계까지 통합 체계 필요"

# 권모(24)씨는 2019년 남편과 이혼하고 당장 갈 곳이 없어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지인 집에서 신세를 졌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아 당장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생계비를 충당해야 했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 동주민센터에 여러 번 찾아갔지만 직원도 관련 제도를 잘 몰라서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권씨 스스로 온라인 카페에서 정보를 찾아 한부모수당, 아동수당, 생계급여 등을 신청해 받을 수 있었다.

임신, 출산, 양육 과정에서 '포기하고픈 순간'에 가장 쉽게 맞닥뜨리게 되는 계층이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일 것이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라면 이들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위기의 순간마다 국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끔 촘촘한 지원제도를 설계해야 할 테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출생 미신고 아동과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이런 정책적 관심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공 상담기관 부재… 출산 여부 결정부터 난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아이를 낳아야 할지, 낳는다면 직접 키워야 할지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숙고를 거듭해야 할 위기의 초입 단계부터 우리나라 임산부는 난관에 봉착한다. 공적 상담기관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가족전화 상담을 운영하고 대면 상담이 가능한 가족센터를 두고 있다지만, 두 조직 모두 위기임산부 지원이라는 측면에선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가족전화 상담은 상담 기능 없이 지원 제도를 안내하는 정도다. 그나마 심층 상담이 가능한 가족센터가 전국에 243개 설치돼 있지만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 임신·출산에 특화돼 있지 않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위기 임신일 경우 아이를 낳을지, 낳겠다면 직접 키울지 입양을 보낼지를 고민하게 될 텐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후회를 최소화할 결정을 내리려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원 제도가 있다는데… 정보 접근 '깜깜이'

아이를 양육하기로 결심했다면 정부 지원을 받는 일의 어려움을 체감할 차례다. 어떤 지원 제도가 있는지 정보를 찾는 것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양육자와 아동의 연령, 경제적 상황, 지역 등에 따라 지원 내용 및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지원 방법도 다르다. 대체로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신청이 가능하지만 정부 복지포털 사이트 '복지로'나 가족센터, 시군구청 등에서만 신청이 가능한 서비스도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 말부터 한부모가족 복지서비스를 망라한 종합안내서를 배포하고 있고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를 통해서도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임산부들이 그런 안내처를 쉽게 인지하고 접근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권씨는 "이혼 당시엔 뭔가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중에 복지로를 알게 됐는데 신청 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웠다"며 "주민센터에 가면 다른 민원인도 많아 한부모라고 밝히기가 위축되는데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특화된 시설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원 수준이 충분치 않은 점도 문제다. 위기임산부나 한부모에 특화된 제도는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정도가 전부고, 나머지는 기존 복지제도 가운데 지원 조건이 맞아야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주거 지원은 대부분 시설 입소나 공동주거 형태다. 아이와 독립적 공간에서 거주하려면 운이 따라줘야 한다.

예컨대 1세 아동을 혼자 양육하고 있는 20대 여성을 상정한다면 그는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로 월 20만 원, 추가 아동양육비로 월 10만 원의 현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한부모에 특화된 지원책 외에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아동수당 월 10만 원, 월 17만 원꼴인 국민행복카드(연 200만 원), 부모급여 35만 원을 포함하면 일시적으로 92만 원가량 지원을 받는다. 의료비·주거 지원 등이 별개로 있다지만, 2인 가구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긴급복지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돼야 더 많은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위기 임신·출산 상황에 맞춤형으로 지원해 주는 항목이 거의 없고, 전세임대주택이나 긴급복지지원 등도 원래 있던 제도에 위기임산부가 포함되도록 짜 맞춘 것"이라며 "제도를 새로 만드는 게 오래 걸린다면 기존 제도라도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각각 흩어져 있는 제도를 사례자에 적합하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다.

"상담부터 지원 연계까지 원스톱 통합서비스 필요"

전문가들은 위기임산부 지원을 위해 분절된 제도를 통합하고 상담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원스톱서비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정보를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임신지원센터 하나만 떠올리면 상담과 지원책 연계까지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는 식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원 기관들도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면서 다른 기관으로 보내는 등 지원책 사이에 연계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상담뿐만 아니라 사례 관리를 통해 제도를 연결해 줄 수 있는 통합 지원 체계와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담을 통해 두려움을 해소해 주고 양육이 어렵다면 입양 등을, 양육이 가능하다면 양육 방법을 안내해 줘야 한다"며 "임신 초기부터 출산, 양육까지 모든 단계에서 상담과 지원을 받으며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모든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출산을 할 경우 영아 살해·유기, 아동학대 등의 형태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갈 수 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더 이상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위기임산부 문제에 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