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관리 패러다임

입력
2023.07.23 20:00
25면

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올해도 호우로 매우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발생했다. 매년 반복되는 재난 뉴스는 안타까움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행정당국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데 '재발하는 재발 방지 약속'이 되고 있다. '예산 없다', '재난이 아니라 인재고 네 탓이니 사퇴하라'거나, 사고 책임 수사 고소와 공무원 등을 처벌하는 식의 의례적 행태를 답습한다. 정치적 공방과 처벌을 해도 유사한 재난 사고가 반복되니, 이런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들도 있다. 하지만 재산손실과 인명피해를 막으려는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행정당국이 재난 예방 및 대처의 주체이고 국민들은 관리의 대상(객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은 수동적 존재로 재난대처 자율 역량을 갖추지 못한 측면이 있다.

오송 지하차도 진입 순간 극적으로 탈출한 운전자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었다. 황톳빛 강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서너 대의 차량이 지하차도 진입을 망설이다가 한 대가 앞으로 가자 모두 따라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만약 운전자들이 재난현장에서 안전대처 관련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 역량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운전자들은 진입하지 않았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공무원이나 경찰의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 스스로 안전을 위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행정당국이 중심인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들이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안전관리의 셀프 역량을 함양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 결합될 때, 좀 더 실효적으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금번 경북 영주 단곡2리 이춘길 이장님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폭우 속에서 산으로부터 생전 처음 듣는 '꾸우우' 소리가 나자, 즉시 마을주민에게 대피 방송을 해 산사태 직전 주민 45명의 생명을 지킨 것이다. 재난현장 상황에서 주민들이 자신과 주변 사람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재난안전대처 셀프 리더십 훈련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오래전부터 기업경영의 지향 과제는 현장 담당자나 일선 관리자가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임파워먼트된 자율경영(self management)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장 등이 주도하는 경영방식은 직원들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이지 않게 된다. 수동적인 조직문화를 탈피하여 조직구성원들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업현장에서는 고관여 조직(high involvement organization or high engagement organization) 또는 고몰입 조직(high commitment organization)이 추구되어 왔다.

우리나라 행정당국의 재난 예방과 대처 시스템도 국민이 능동적으로 재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 고관여 안전문화'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전국 지역 자율방재단 같은 지역 조직도 정부 중심이 아닌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도록 하여, 각종 재난 상황에 직면한 시민이 중앙통제가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대응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관이 함께 '역발상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매우 절실한 때이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사)기업가정신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