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전문점의 허구와 허상

입력
2023.07.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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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태와 맞물려 ‘사찰음식 전문점’이 부쩍 눈에 띈다. 하지만 가격도 비싸거니와 막상 차려진 음식을 보노라면 ‘이게 뭔가?’ 싶은 낯섦이 있다. 절에서 30년이나 살았는데, 난 그들이 말하는 사찰음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찰음식이라면 승려들이 일상으로 먹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익숙함이 아닌 생경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찰음식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한 관람객이 ‘스님들은 진짜 잘 먹는구나!’라고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나도 처음 본 음식들이 전시돼 있었다. 절에서 늘 먹던 음식이라면, 내가 이 정도로 흥미롭게 둘러보진 않았을 것이다. 외국 상점에 김치 주스가 진열돼 있는 느낌이랄까? 친밀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은 느낌. 딱 이 정도가 사찰음식 전문점의 음식이다.

청정(淸淨)과 검약(儉約)을 추구하는 사찰음식에 화려함이 있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다. 나는 당연히 피자를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경험한 ‘이탈리아 피자’의 토핑은 밋밋하고 심심한 맛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다채로운 토핑의 향연과 비교되는 심플함, 이것이 이탈리아 피자였다.

그러다 든 생각. ‘맞다! 이탈리아인들은 이게 주식(主食)이지.’ 모든 주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아니, 자극적일 수 없다. 그래야만 평생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밥도 자극적이지 않잖는가! 빵도 그렇다. 프랑스 빵은 밀의 풍미가 있을 뿐, 우리처럼 빵 안에 슈크림과 단팥 등이 가득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갓 지은 밥맛’이라는 의미가 그들의 빵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서구의 주식인 피자나 빵이 우리에게는 간식이다. 그래서 다양한 간식 중 선택받기 위한 처절하고도 화려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피자는 느끼해서 두 쪽 이상 못 먹겠다’는 말은 피자가 한국에서는 ‘간식’으로 변한 결과다. 이탈리아인들은 ‘1인 1판’인데, 설마 우리같이 토핑이 가득한 피자를 먹겠는가? 물론 우리도 이제는 피자와 빵 문화가 정착되면서, 화덕 피자나 담백한 빵이 범위를 넓히고 있다. 포토샵 수정본을 지우고 환지본처(還至本處)하는 셈이랄까?

사찰음식은 산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골 재료에, 불교의 금지식인 파·마늘 등 오신채와 육류가 없는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이다. 채식 라면처럼, 감동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음식일 뿐이라는 말씀.

게다가 예전의 큰 사찰은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이 말인즉슨, 밥과 국도 모두 남성인 비구승이 준비했다는 의미다. 승려들 소임에 밥을 짓는 ‘공양주’(또는 반두ㆍ飯頭)와 국을 끓이는 ‘갱두'(羹頭), 또 반찬을 마련하는 ‘채공’(菜供) 등이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낸다. 그래서 특출한 음식이 나온다는 것은 누가 봐도 쉽지 않다. 군대 취사반에서 미슐랭 셰프가 나오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혹자는 ‘비구니 스님들은 다를 수도 있지 않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한된 식재료만 사용하는 데다, 식탐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찰에서 특별한 음식이 나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네 사찰은 검소함과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가! 발우공양 때 고춧가루 하나만 남아도 문제가 되는 곳이 사찰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대도시에 있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고가의 사찰음식점은 현대인의 허상을 이용한 영악한 상술이 아닌가 한다. 진정한 사찰음식이라면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옛 시골의 장터국수 같은 수더분한 서민의 미소가 배 있는 것이 맞다. 여기에 산사(山寺)의 특성상 깔끔함과 청량함이 조금 더 깃드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