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8> 글로벌 스탠더드- 9월 학기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3월 개학'을 못 하고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있었던 2020년 봄의 일이다. 기왕 개학이 지연되고 있으니 이를 계기로 아예 학기를 반년 미루어 9월 학기제로 바꾸자는 의견이 개진된 바 있었다. 그러나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학기제를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9월 학기제 관련 논의는 그 후 사라져 버렸는데, 과연 이 일이 대통령 한마디로 이렇게 묻혀 버려도 되는 것일까?
'9월 학기제'는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 교육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연초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 세 나라뿐이다. 이 중 남반구 호주는 우리와 계절이 반대이기에 역시 가을에 시작하는 셈이다. 사실 새 학년을 어느 계절에 시작하건 교육 내용이나 효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도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전혀 아니다. 좁아진 지구촌 사회에서 대다수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택하고 있는 제도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분야이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 독자 시스템을 운용하는 일은 결국 퇴보를 초래하는 길이다. 찰스 다윈은 육지로부터 고립된 탓에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던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험해서 진화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육지와 갈라파고스 두 곳 중 어느 곳의 생물이 더 많이 진화했을까? 한때 세계를 리드하던 일본 전자산업이 21세기 들면서 부진에 빠진 이유는 국제적인 표준보다 내수시장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났을 때 발생하는 경쟁력 상실을 일컫는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대부분 9월 학기제로의 전환은 필요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듯싶다. 그러나 급한 일은 아니라고 계속 미루고 있는데, 필요한 일을 서두르지 않는 조직이나 개인이 발전할 수 있을까?
국가도 마찬가지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우리 미래 세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교육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10대 경제력을 지닌 지구촌의 주역 국가다. 해외로 나가는 학생이나 외국에서 들어오는 학생이 모두 많아져 국제교류가 급증한 상황에서, 유학을 가거나 오는 경우에 생기는 6개월간의 공백은 당연히 매우 불편한 일이다. 이는 외국 학생들이 대한민국에 오는 것을 기피하는 하나의 원인이다. 세계 무대에서의 우리 교육 경쟁력을 고려하면 9월 학기제 도입은 필연적이다.
사실 현행 3월 학기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제도다. 일본이 남겨 놓은 것이다. 이렇게 100여 년 넘게 자리 잡은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일은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는데, 특히 교육제도 변경은 온 국민이 관여되어 있기에 갈등도 있을 것이다. 장기 계획과 끈질긴 추진력이 필요하다. 면밀한 검토를 거쳐 정책을 수립하고, 당연히 이를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9월 학기제는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까? 가능한 방안 중 하나는 과도기로 6년을 잡고, 그동안 현행 12개월인 한 학년 교육과정을 11개월로 단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5년부터 9월 학기제를 도입한다면, 그해 3월에 입학하는 각급 학교 신입생들에 대해서는 이듬해 1월 말에 1학년 교육을 마치고, 2월 1일에 새로이 신입생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단축 교육과정을 전 학년에 대해 6년 연속 시행하면 9월 학기제가 자리 잡게 된다. 교육과정 압축에는 물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이를 한 달 정도 단축하는 일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덧붙여 9월 학기제 도입은 지금보다 초등학교에 6개월 일찍 입학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좀 더 부합하는 일이다. 현행 6세 입학을 6년간 매년 한 달씩 앞당기면 5.5세 입학에 이르게 된다. 당연히 유아교육도 6개월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에 9월 학기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됐으면 좋겠다. 우선은 이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하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계속 미루기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