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3주 병가를 냈어요. 무자비한 민원 때문에 휴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학부모님들은 모를 거예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A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5년 차 교사는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 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담임과 학교폭력(학폭) 업무를 같이 맡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그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의 심정이 뼈저리게 공감된다”고 했다. 무너진 교권이 초래한 비극적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틀 전 1학년 담임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초교 교문 앞엔 이른 시간부터 숨진 교사를 애도하는 글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동료 교사’ 명의 근조화환 400여 개가 학교 담벼락을 둘러쌌고, 오후 3시 예정된 ‘포스트잇 추모제’ 시간이 다가오자 검은색 옷과 신발, 마스크 등 추모 복장을 하고 모인 교사들의 행렬이 100m 넘게 이어졌다.
교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학부모의 ‘갑질 민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결정적 동기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다. 10년 차 초등교사 김모(33)씨는 “‘숙제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해도 항의를 받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울산에서 첫 교편을 잡은 새내기 교사(29)도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해야 학부모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죽음의 파장은 컸다. 교사들뿐 아니라 추모와 탄식, 성토가 교육현장을 뒤덮었다. 올해 교육대에 들어간 윤태영(19)씨는 “선배들로부터 교권 추락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면서 “졸업 후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온 19년 차 고교 교사는 “세대와 교육 단계를 막론하고 교사라면 모두가 공감할 아픔”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학생ㆍ학부모들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5학년 아들과 국화를 헌화한 한 학부모는 “숨진 선생님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인데 마음이 쓰여 함께 했다”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손녀가 이 학교 1학년에 다닌다는 70대 조부모는 “아이에겐 선생님이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설명했다”면서 “오며 가며 마주친 교사인데 얼마나 마음의 병이 심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준비한 국화꽃 200송이 절반은 일반 시민들이 헌화했다. 또 퇴근시간 무렵엔 추모객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 경찰이 학교 앞 4차선 도로 중 2차선을 통제할 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이 컸다. 추모객이 잇따르자 학교 측은 오후 6시쯤 정문 안쪽에 테이블 3개로 임시분향소를 꾸리기도 했다.
교사단체들은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사망한 교사의 외삼촌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젊은 교사가, 그것도 근무하는 학교에서 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조카를 죽음으로 내몬 교육환경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거센 비판 여론과 달리 학교 측은 제기된 의혹을 전부 부인했다. A초교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고인은 학폭 업무를 맡지 않았을뿐더러, 담당 반에서 유일하게 발생한 학생 간 사안도 다음날 마무리됐다”고 주장했다. 저연차 교사를 일부러 기피 학급에 배정했다는 의혹, 정치인을 뒷배로 둔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는 풍문도 사실무근으로 못 박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의혹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해당 교사가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볼 만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