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장애인 시위

입력
2023.07.23 15: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 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1984년 9월 19일,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김순석씨는 염보현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쓰고 목숨을 끊었다. 이후로도 대중의 무관심 속, 장애인 운동은 처절한 모습으로 줄곧 이어졌다.

□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장애계에서 기리는 장애해방열사들의 이름이다. 2020년엔 43명의 장애해방열사 추모 행사가 열렸다. 장애인 관련 제도들이 후퇴와 전진을 반복해 온 마디마디에 이 이름들이 깃들었지만, 비장애인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에 비해 2021년 말부터 1년 넘게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는 장애인 시위의 대중화라 할 만하다. 시민들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찬반 논란이 강하게 충돌해서다.

□ 전장연은 이달 들어 버스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계단이 있는 버스는 차별버스”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서울시는 “저상버스 비율이 71.9%로 전국 1위”라고 반박한다. 전장연은 시위 성과를 높이기 위해 서울의 지하철·버스를 택하고 있을 뿐, 요구 사항이 서울 이동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례로 전북 익산엔 보행상 중증장애인은 5,871명인데, 저상버스 노선 비율은 3.8%이고 장애인콜택시는 28대뿐이다. 이들은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장애인 이동권 지역 간 차별 해소 등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지난달엔 기획재정부에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 전장연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며, 여론의 지지를 잃었다는 진단도 많다. 시위하는 장애인에게 욕설을 뱉는 사람도 흔하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장애인들이 눈치를 보며 얌전히 있을 때, 여론이 알아서 이들의 권리를 챙겨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방관하거나 비난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비난받으며 시위하는 게 그나마 더 희망이 있다는 걸, 43명의 열사를 둔 장애인계는 알고 있다.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