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수질 오염 등을 이유로 금강·영산강에 설치된 5개의 '4대강 보(洑)'를 해체 및 상시 개방하도록 한 결정의 근거를 신뢰할 수 없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4대강 재자연화' 기한에 맞춰 평가기간을 짧게 설정하면서 함량 미달의 판단 근거를 무리하게 끼워 맞췄다는 것이다. 특히 보 해체를 논의한 일부 민간 전문위원들이 회의에서 "(엉터리 근거를 사용해도) 생각 없는 국민들은 '말 되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내용도 담겼다.
감사원은 20일 금강·영산강 보 해체와 상시 개방의 타당성에 대한 감사 결과, 보를 해체했을 때 경제성이 있는지 등을 따지는 과정이 불합리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4대강 조사평가단은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경제성 △수질·수생태계 평가 △보 안전성 △물 활용성 △인식 및 선호 등 5개 부문을 평가해 편익이 비용보다 큰 세종보, 공주보, 죽산보 등을 완전 또는 부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비용이 크다고 평가받은 백제보와 승촌보는 수질과 인식 평가를 종합검토해 상시 개방키로 했다.
조사평가단은 수질 관련 편익을 산정할 때 보 해체 전후 측정자료를 활용했는데, 감사원은 이들이 활용한 자료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보 설치 전 자료는 △4대강 사업에 따른 하천 모습의 변화 △오염물질 유입으로 인한 수질 지표(화학적 산소요구량·COD) 악화 △보 상류 500m 지점으로 정해진 측정 지점의 실측 데이터 부재 등을 반영하지 못했다. 보 개방 후 자료 역시 개방 기간이 효과를 확인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외부 영향의 보정이 필요했지만 그대로 활용됐다.
감사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런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겨 있었다. A위원은 2019년 1월 3차 회의에서 "모니터링 기간도 충분치 않고, 특히 영산강은 한계가 극명한 수치로 값을 구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지만, 보 처리방안 결정 시기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반론에 막혔다. 보 처리방안 결정 시기를 단기간으로 정해놓고 짜 맞추는 과정에서 보 해체와 관련 없는 과거 하천 관련 설문조사가 인식조사에 활용됐고, 법에 제시된 평가지표 중 일부만 활용해 수질 개선 여부를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위원들은 버젓이 엉터리 근거를 활용하자는 발언도 했다. 2019년 2월 회의에서 B위원은 "우리가 보 설치 이전 수치를 쓰더라도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딱 들었을 땐 '말이 되네'라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해 1월 회의에서 C위원은 영산강 승촌보와 죽산보의 수질이 보 개방 후 더 나빠지는 것으로 나오자 "편익 감소분을 비용에 넣어서 상식에 부합하는 0과 1사이로 넣는 게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냐"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졸속 결정 배경엔 2개월이라는 짧은 평가 기간이 크게 작용했다. 감사원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과학적·합리적 기준에 따른 분석에 근거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하지만, 국정과제에 설정된 보 처리방안 마련 시한에 얽매여 핵심적인 평가 방법·기준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 처리방안 마련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말까지 보 처리 방침을 확정 짓겠다고 했으나, 본격 연구가 시작된 것은 2018년 11월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실은 2018년 12월까지 환경부에 신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에 감사원은 환경부에 과학적·객관적 분석 결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재검토할 것을 통보했다. 또 4대강에 반대하는 환경 시민단체의 요청에 따라 4대강 조사평가단 위원회 구성에 부당하게 개입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담당 팀장 및 단장에 대해서는 지난 1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번 감사는 4대강 관련해 5번째다. 특히 정권 교체에 따라 정치적 목적으로 4대강 감사 결과가 뒤바뀌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3명의 대통령(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치면서 이뤄진 지난 4번의 감사는 비록 정치적으로 이용됐지만 수질을 오염시키고, 홍수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과학적 분석 자체를 뒤집지는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 감사원은 정치적 이유로 과학적 데이터를 뒤집는 초유의 결정으로 정치적 결정의 근거를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감사원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감사원이 전 정권을 압박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점이 문제"라며 "이번 감사 결과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감사원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