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광탄면 명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용미리제1공원엔 '나비정원'이 있다. 예쁜 이름을 가진 곳이지만, 부모 품 밖에서 세상을 떠난 어린 아이들이 영면에 든 장소다. 정원 한 편엔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노란 나비를 새긴 석재함이 있는데, 이 안에 유족이 인수를 포기한 영유아 5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부모가 버리고, 세상이 놓친 아기들은 나비정원에만 있는 건 아니다. 공원 초입 쪽 무연고 추모의 집이라는 작은 건물, 현판도 붙어있지 않은 이곳에 미등록 영아 등 14명이 잠들어 있다. 다른 묘지나 납골당엔 간간이 유족이나 친구들이 찾아와 고인의 넋을 기리지만, 무연고 추모의 집은 발길 끊긴 적막의 공간이다. 한국일보가 찾아간 18일에도, 참배하는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짧으면 며칠, 길어야 몇달 몇년을 살다간 안타까운 생명들. 이 아기들은 도대체 왜 누구도 찾지 않는 이 외로운 공간에서 안식해야만 했던 걸까.
하윤(가명)이의 짧은 삶을 돌아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2020년 11월 2월 태어나 이튿날 세상을 떠난 하윤이가 나비정원에 잠들어 있다. 하윤이가 서울시 공영장례를 거쳐 이 곳에온 이유는 가난한 엄마가 시신 인수를 포기해서다.
지상에서 단 하루를 살았던 하윤이는, 그 추웠던 겨울 베이비박스 바로 맞은편 고무통 위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원치 않은 임신 때문에 하윤이를 낳은 생모는 출산 직후 혼란 속에서 베이비박스 장소를 잘못 알고 하윤이를 엉뚱한 곳에 뒀다. 경찰 조사를 받은 생모는 끝내 하윤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고, 아이는 죽은지 한 달 보름이 지난 12월 19일에야 겨우 이곳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윤이처럼 부모에게 끝내 버림받아 무연고 장례 절차로 가는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한국일보가 서울시에서 입수한 '영유아 공영장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달까지 5년 간 모두 19명의 아이들이 공영장례를 통해 영면했다. 이 중 15명(78.9%)은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미등록 영아'로 추정되고, 나머지 4명은 출생신고는 됐으나 병원 치료 중 부모와 연락이 두절된 사례 등이다. 공영장례를 치른 아이들 중 부모들의 시신 인수 거부 의사가 확인된 경우는 나비정원(5명)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연고 추모의 집(14명)에 안치된다.
생부·생모의 출생신고가 없었던 15명 중 8명(53.3%)은 보호기관에 맡겨졌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태어난 직후 부모에 의해 바로 유기 또는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도 5명이나 됐다. 2020년 6월 서울 성북구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던 남자아이가 그 중 하나인데, 결국 경찰 수사에도 부모를 찾지 못해 그해 8월 공영장례 절차로 넘어갔다. 2018년 12월 광진구 재건축 현장의 빈 집 변기 옆에서 탯줄이 달린 채 발견된 남자아이는 이듬해 5월 공영장례가 진행됐다.
공영장례 19건 중엔 경위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다만 사연이 확인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부모가 경제적 이유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직접 양육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런 선택을 했다. 하윤이 생모 역시 가난 때문에 임신중절 수술을 할 형편이 못됐고, 낳고 나서도 양육비가 없어 아이를 포기했다고 한다. 2019년 6월 공영장례를 치른 한 여자아이의 생모는 원룸에서 홀로 출산한 직후 아이를 목졸라 살해했는데,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기가 태어나 제대로 살기 힘들 것 같다"고 진술했다.
외국인 불법 체류자가 아이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2020년 5월 추모의집에 안장된 여자아이의 생모는 태국 국적의 불법체류자였는데, 체류 신분 때문에 각종 정책 지원에서 배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장례를 치른 아이들의) 부모 대부분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유가족의 빈 자리를 공영장례로나마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