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40)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여전히 '난제'에 빠져 있다. 19일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에서 열린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한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또 다른 난제에 도전하는 걸 즐기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는 허 교수처럼 난제에 도전하는 젊은 수학자들이 허 교수의 이름을 딴 연구소와 연구 지원 제도를 통해 긴 호흡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고등과학원은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과학원 산하 수학난제연구센터를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로 확대 개편하고, 허 교수의 서울대 학부·석사 시절 지도교수였던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를 소장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허준이 펠로우' 제도를 통해 잠재력이 뛰어난 젊은 수학자들을 선정하고 자율적인 장기 연구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허 교수는 이날 '같음과 다름'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그는 버섯, 비눗방울, 물방울, 조약돌 등이 각각 여러 개 있는 사진을 보여 주며 이들을 셀 때는 "과감한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속에 조약돌이 몇 개 있냐 물으면 보통 하나, 둘, 셋 이렇게 세서 답한다. 이 답변에는 여러 개가 모두 '같은' 조약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사실 그 돌들은 모두 완벽히 같지 않다. 허 교수는 "조약돌이 만약 감수성이 있고 예민하다고 가정한다면 한데 묶어서 세는 건 상당히 폭력적"이라면서 "'같다'라는 표현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약속을 정하는 게 (같음과 다름을 정의하는) 질문의 핵심"이라고 했다.
강연 말미에는 "구별할 수 없는 것들을 같다고 하는 것은 수학자들이 좋아하는 '단순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미국 수학자 하이먼 배스의 '인생과 수학에는 단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무엇이 참인가? 왜 참인가?'라는 말을 소개했다. "결국 깨끗하고 정확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허 교수는 강조했다.
한편 '포스트 허준이'를 꿈꾸는 '허준이 펠로우'에는 라준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박사후연구원, 박현준·최인혁 고등과학원 박사후연구원이 선정됐다. 허준이 펠로우는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의 클레이 펠로우를 본뜬 제도다. 허 교수 역시 2014년 클레이 펠로우에 선정돼 5년간 연구 지원을 받았고, 허 교수를 포함해 클레이 펠로우를 지낸 연구자 중 9명이 필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년 내 두 번째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게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의 목표다. 허 교수는 "국내에는 필즈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뛰어난 수학자들이 한두 사람 정도가 아니라 매우 많다"면서 "적당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10년 내에도 (연구소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