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외교 신뢰 상실의 순간

입력
2023.07.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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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트럼프 때는 방향이라도 일관됐는데.”

미국 워싱턴의 한 인사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외교안보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중동부터 시작해 중국, 북한까지 바이든 외교가 제대로 힘을 쓰는 곳이 거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유세 기간 현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가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세계 질서를 꼬이게 만들었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취임 후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 회복을 외쳤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을 쥐어짜 방위비 분담금과 각종 양보를 얻어냈다.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 유럽을 무시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위상 약화를 추구했고, 러시아를 추켜세워 우크라이나 침공 길을 열었다.

그런데 이를 극복하겠다며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중동 외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슈끄지 암살 책임을 묻겠다며 윽박지르다 고개를 숙이고 먼저 찾아가지 않나, 민주주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총리를 7개월 동안 외면하다 중국에 먼저 간다고 하니 부랴부랴 초청하는 식이다. ‘가치외교’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미국을 우리는 과연 친구라고 무조건 믿을 수 있는 건가.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하지만 사실상 ‘전략적 인내 시즌 2’라는 비판이 많다. 급격한 구조 변화 대신 현상유지를 꾀하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이다. 대북정책특별대표 자리를 단독 보직으로 두는 성의조차 없었다.

동맹을 챙기는 것 같으면서도 ‘트럼프보다는 공손한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앞세워 뒤통수를 때리는 것도 그렇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미국 국익 우선주의의 극치였다.

결국 믿을 건 미국 의존이 아니라 우리의 힘이다. 시시각각 뒤바뀌는 각 나라의 움직임과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돌파할 역량 말이다. 죽을 둥 살 둥 싸우고 있는 나라에 가서 ‘생즉사 사즉생’이라는 하나마나 한 발언을 내놓기 전에 챙겨야 할 한국의 외교안보 원칙은 스스로 헤쳐나갈 힘, 자강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