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윤석열 정권, 국민 화나게 하고 있다"

입력
2023.07.20 11:04
19면
<취임 1주년 인터뷰>
고속도로 백지화 원희룡 거론 "있을 수 없는 일"
호우피해 "명백 인재, 책임지는 사람 아예 없어"
오염수 방류 "日·IAEA 믿고, 국민 못 믿는 정부"
"민심이 아닌 尹心만"… 국민 품고 공감 얻어야

김동연 경기지사의 명패에는 이름 석자만 있다. 자개 문양도, 직함도 없는 30㎝ 길이의 나무 명패다. 김 지사가 1983년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첫발을 내디딜 때 썼던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패 뒤에는 정식, 성실, 창의 세 단어가 적혀 있다. 성실한 인상의 김 지사가 지사 생활 1년 만에 날이 많이 섰다. 그는 이번 폭우 피해 때 대통령실이 “한국에 가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한 데 대해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윤 정부가 들어선 이후 “쪼개는 정치와 뺄셈 외교로 한국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지사를 18일 만났다.

-충청과 경북의 비 피해가 심각했다.

“고향이 충북이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공직자로서 이렇게 피해가 커진 데 대해 부끄럽다. 이건 인재라고 본다. 이런 일이 생기면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책임을 묻는 사람만 있는 것 같다. 기후변화가 이제 뉴노멀이 된 이상 과거와 같은 재난대응 시스템에서 벗어나 국가대응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거기에 대한 대처나 반응이다. 대통령실이 ‘간다고 상황을 바꿀 수 있겠냐’는 식의 대응은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지도자라면 국민을 품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이 한동안 뜨거웠다.

“문제의 본질은 주무 장관의 말 한 마디로 오랫동안 정당한 절차와 많은 비용을 들여 추진한 국정과제를 손바닥 뒤집듯 안 하겠다고 백지화한 것이다. 책임 있는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년 동안 예비타당성 조사한 노선을 나중 50여일 조사해서 노선을 변경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골목길이라도 그렇게 안 했을 것이다. 국민들은 다 안다. 지금 국토부가 수습할 수준을 넘어서 대통령실이 빨리 수습하고 정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경기도의 입장은 당초 목적에 맞게, 주민 숙원을 풀어줄 수 있으면서 가장 빨리 할 수 있을 것을 하라는 것이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서 ‘대한민국이 작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은 ‘다이내믹 코리아’로 가야 하는 데 ‘다운사이징 코리아’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정치는 갈라치기, 외교는 뺄셈외교, 경제는 활력을 잃게 하고 사회는 갈등을 키우고 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작아지고 있다. 국정 난맥상의 원인을 민심에서 찾아야 하는데 민심이 아니라 ‘윤심’만 찾고 있다. 윤 정권에 대해 종합적으로 박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때문에 어민들의 걱정이 많다.

“5년 정권이 50년 미래 세대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모양이 됐다. 지난 주 한일정상회담 때가 양국 정상끼리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오염수 처리에는 기체화, 매립, 전기분해 등 여러 방법이 있는 데 프레임을 오염수 방류에만 맞췄다. 우리 정부가 다른 처리방법을 주장하든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한다든가 방법을 놔두고 일본 정부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얘기하는 걸 갖고 거꾸로 우리국민을 설득하고 있다. 일본과 IAEA는 존중하면서 우리 국민은 무시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기후위기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국제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데 우리는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후변화 대응을 잘 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나라 수출길이 막힐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따르면 2040년까지 RE100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수출 감소가 반도체 31%, 디스플레이 40%, 자동차 14%로 예상돼 있다. 이처럼 기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할 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녹색성장기본계획에서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30%에서 21%로 낮췄고 탄소중립계획을 대부분 이 정부 임기 이후로 미뤘다. 경기도는 최근 50개 산단에서 태양열 RE100 협약식을 맺었다. 거기서 원전 2,3개 생산량인 2.8기가와트(GW) 정도의 신재생 에너지를 만들 것이다. 기업들이 거기에 들어가는 4조 원을 투자한다고 했다. 경기도가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타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따라오도록 하겠다.”

-기회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생소한 개념인데 기본소득과 비교해 달라.

“기회소득은 보편과 선별이라는 논란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기회소득은 시혜적으로 뭔가를 주는 복지개념이 아니라 사회투자 개념이다. 기회소득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한정된 계층에, 일정기간 지급한다는 특징이 있다. 경기도는 일단 예술인과 장애인들에 기회소득을 제공한다. 예술인을 예로 들면 작품활동을 하는 데 사회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할 때까지 경기도가 5년 정도 돕는 것이다. 이번에 장애인 기회소득에는 2,000명 지원에 1만 명이 지원했다. 다수에게 보편적, 무조건적, 정기적으로 주는 기본소득과는 철학을 달리한다. 기본소득은 제대로 철학이 정립된 것도 아니고 재원에 대한 대책도 없다.”

-여야 대립이 심각하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됐다.

“경기도는 여야정협의체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협치에 노력하고 있다. 도민을 향한 진정성이 배경이라고 본다. 타협의 정치에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1년이 넘도록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다. 보기 싫어도 만나고 하다 보면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중앙정부의 대화 없고, 타협 없는 저런 모습이 지방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실제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부총리 출신답게 해외출장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취임 이후 두 번 출장을 갔는데 첫 출장은 외자유치에 주안점을 뒀다. 4조3,000억 원의 외자유치를 성사시켰다. 한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정책 토론을 하는 도중 경기도에 1조 원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우리가 갔다 오고 2주 뒤 대통령도 미국에 순방을 갔는데 현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나 반도체법(CHIPS)에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아 놀랐다. 두 번째 인도 출장에서는 우리 기업 227개가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만들어 줬다. 태국에서는 ‘G페어(우수상품 박람회)’에 계획에도 없던 부총리가 방문했다.”

-경제와 효용을 강조하다 보니 여당 성향의 야당 인사라는 말도 있다.

“그 말은 시장을 잘 아는 경제에 유능한 진보라는 칭찬으로 알겠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수당이었음에도 민주당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는데 그건 야당 같은 여당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여당 같은 야당이 돼야 한다. 경제활성화를 시키고 기업을 존중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많이들 착각하는데 제대로 된 진보는 시장을 중시한다. 다만 시장 결함에 대한 보완책을 고민하는 것이지, 시장이나 기업을 도외시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실사구시 시장정책으로 경기도의 경제성장을 이끌겠다.”

-성장과 복지를 어떻게 균형 있게 꾸려나갈 계획인가.

“동반성장이라는 말을 2005년 제가 처음 썼다.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이 가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두 바퀴가 아니라 한 몸이라고 본다. 양극화나 빈부격차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고령화 문제가 있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성장이 어렵다.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인데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새롭게 규정한 복지자본주의가 필요하다. 복지는 퍼주기가 아니라 일자리를 만드는 게 돼야 한다.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겠다.”(김 지사는 이와 관련 <좋은 불평등>과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두 권의 책을 소개했다.)

-청년들이 어렵다. 청년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지금의 사회구조와 게임의 룰을 만든 게 기성세대다. 그 중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청년들이 어려운 것은 청년들 잘못이 아니므로 자책하거나 위축되지 말아달라. 그리고 힘내라고 격려하고 싶다.”

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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