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에 색안경 씌운 방송

입력
2023.07.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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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염기정(이엘)은 얼마 전 있었던 소개팅 얘기를 하며 화를 낸다. "야, 내가 한 번 갔다 온 건 암말 안 해. 요즘 세상에 그게 뭐 흠이야? 근데 애 딸린 홀아비가 말이 되냐?" 주선자가 혼자 애 키우는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는 말이다. 마침 옆 테이블에서는 조태훈(이기우)이 딸을 데리고 고기를 먹고 있었다. 이혼남 옆에서 홀아비를 폄하하는 실수를 저지른 염기정에게 조태훈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결혼이었어요. 안 그러면 어디 가서 이렇게 이쁜 딸을 만나 보겠어요?" 결국 두 사람은 사귀게 되는데 그건 염기정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태훈의 가정을 비뚤어지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전통적인 가정의 룰을 깨고 '플라스틱 밴드'처럼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김하나·황선우 작가가 그들이다. 나이 들면 당연히 결혼이라는 수순을 밟게 되어 있는 일반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여성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룸메이트로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적 삶에 대한 기록이다. '비슷한 점이 사람을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은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는 그들의 통찰은 우리 사회도 이제 가정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변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며칠 전 TV에서 이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오랜만에 TV에 출연한 그 부부는 잉꼬커플을 거쳐 모범적인 가정을 이룬 사람들로 소개되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연예 활동을 접고 몇 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고 패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과감히 자신의 경력을 희생한 부모에게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이들 곁에 있어 주기 위해 함께 미국으로 간 이유가 둘 다 편모슬하에서, 즉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정상적인 가족의 사랑을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고백한 것이었다. 자신들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쁜 가족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도 했다. 정상가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4인 가족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어느새 나도 남성 가장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 내 위계를 설정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부의 발언은(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모두 비정상이나 불행한 처지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출연자들은 본인들의 생각을 그렇게 밝힐 수 있다 해도, 같이 있던 방송의 진행자나 패널들은 실시간으로 그걸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패널들은 그저 애들 잘 키웠다는 말만 반복했고 나중에 방송국에서 한 노력이라고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었기 때문에'라는 멘트의 자막을 '일반적인'으로 살짝 바꾼 것뿐이었다.

방송은, 특히 음식점이나 대합실에서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는 공중파나 케이블 TV는 아직도 힘이 막강하다. 방송에 나오는 건 픽션임에도 사실로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만큼 방송 진행자나 패널들의 자질 검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번처럼 말리지 않는 시누이들이 더 밉기는 처음이었다.


편성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