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안동 청년들과 인터뷰를 위해 안동역에서 도심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절반쯤 지났을까, 기사분이 겸연쩍은 목소리로 “거리에 아무도 안 보이죠? 평일이라 더 그렇기도 하지만, 안동 거리를 걷는 행인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게 오래됐습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안동은 유서 깊은 집안 종가가 많이 모여 있는 전통의 도시이자,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행정ㆍ교통ㆍ서비스 중심지다. 수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고, 2016년에는 경상북도 도청도 유치하는 등 지역 허브로서 잠재력을 갖춘 도시다. 하지만 지방 도시 인구감소라는 강력한 추세에는 역시 속수무책이다. 도청 유치에 성공한 후 도시 부흥의 꿈에 부풀었던 2016년 말 이후에도 지난 6년간 1만4,000명의 인구가 줄어 현재는 15만 명 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이 선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안동시 출생과 사망자 비율은 대략 1명이 태어나면 2명이 사망하는 수준(2021년 기준)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지속적 유입 없이는 안동 자체가 실종될 상황이다.
안동은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동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공장 증설과 올해 바이오산업 국가산업단지 지정으로 향후 바이오산업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지역 내 전통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은 물론 한국적 정신문화의 글로벌 허브가 되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길 풍부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어, 안동에 정착하겠다며 외지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좀처럼 인구 변화의 뚜렷한 변곡점을 만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안동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춘 안동만의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조업 같은 대규모 사업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안동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와 다수 문화재가 때로는 청년을 떠나게 만든다. 우선 소수 명문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 청년들에게 배타성으로 느껴진다. 단적으로 2000년 이후 당선된 안동시 국회의원과 안동시장은 모두 안동 김씨 또는 안동 권씨다. 이런 분위기에 길들은 20대들조차 본인이 무슨 파 몇 대손인지 자랑스럽게 밝힌다. 강력한 종친문화는 남성 위주 서열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만든다. 평생 안동문화를 연구해 온 여성 학자조차 안동에서 여성을 강연자로 초청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전통문화 해체가 아니라 미래지향적 개편이 시급하다. 지역 청년 사업가들은 풍부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관광 자원화하는 것에서도 안동만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원형을 보존해야 하므로 대중적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안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과 안동댐은 수상스포츠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지만,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적극적 개발에 제약이 많다. 결국 타지역과 비슷한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과 관광 자원화가 공존하는 안동만의 발상이 필요하다.
안동 맞춤형 해법 마련을 위해 안동의 객관적 위치를 파악해 보자. 서울과 수도권에서 안동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포천ㆍ의왕의 안심영역과 만족영역 지수를 안동과 비교했다. 이 지수는 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 있어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포함했다. 안심영역 지수를 비교하면 안동이 수도권보다 부족한 것은 일자리와 의료 인프라였다. 농업 비중이 높은 안동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비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청년이 안동에 머물게 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일자리 만들기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유치해 단기간에 회복할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다. 앞서 분석한 포항은 다수 대기업이 입주해 있어도, 일자리 상황은 수도권에 크게 뒤졌다.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산업이 공존하는 다양한 일자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의료 인프라도 수도권 비교 지역과 격차가 크다. 지자체의 적극적 투자가 요구된다. 안동 청년들이 “안동에서 젊은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도청 신도시조차 산후조리원이 한 곳도 없다”며 “이런 점들이 안동이 아이 키우기 적절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다. 출산 감소의 악순환 고리를 깨려면 아이를 키우고 싶은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만족영역은 일상생활과 긴밀한 요소들이다. 공연장이나 도서관 같은 문화기반시설, 사교육기관 및 업체,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 스타벅스와 올리브영 같은 생활 어메니티(amanity) 등이 포함된다. 안동시의 만족지수는 수도권 비교 대상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구 대비 사설 학원 수는 서울을 앞설 정도다. 반면 인구 대비 대규모 점포나 프랜차이즈 상점은 부족하다.
주목되는 점은 안동시가 전통이 잘 보존된 문화도시라는 자부심이 높지만,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이용할 문화기반시설의 인구 대비 시설 수는 경기 포천시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보존과 계승해야 할 문화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주민들의 일상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산업적 기반으로 연결될 정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안동시는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제4차 문화도시’ 사업 선정 평가에서 탈락했다. 올해 재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외지인 평가를 의식한 치장보다는 주민부터 만족할 수 있는 내실을 갖추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배영 교수는 “안동은 역사적 전통 속에 많은 ‘스토리’가 가능한 도시인 만큼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청년들의 콘텐츠가 결합한다면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산업적 토양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의 유입과 정착, 그리고 지역 활성화를 위해 문화자원의 활용에 주안점을 둔 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료 정리: 김예진, 전솔영(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