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17일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고 18일 다시 논의키로 했다. 권 후보자는 최근 5년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총 63건의 법률 의견서를 작성하고 로펌 7곳에서 18억 원(필요경비 공제 후 7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지난 11일 인사청문회에서 권 후보자는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송구스럽다”며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에서 정한 모든 신고 회피 신청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립대 교수가 로펌에 법률 의견서를 제공하고 건당 수천만 원씩 대가를 받아 교수 연봉보다 더 많은 수입을 거뒀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학문적 자유와 양심을 바탕으로 공익을 위해 힘써야 할 국립대 교수가 로펌이 대리하는 일방의 이익을 위해 전문지식과 경험을 활용했다는 점도 국민 정서상 납득이 어렵다. 관행이라 해도 한 달에 한 번꼴이라면 상시적 업무의 성격이 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리 업무를 금하고 있는 서울대설립운영에관한법이나, 변호사가 아니면서 이익을 받거나 약속하고 법률 관계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 변호사법 위반 소지도 없잖다.
권 후보자는 이해충돌 우려에 대해 최근 2년간 법률의견서를 제출했던 로펌들이 대리하는 모든 사건은 회피하겠다고 밝혔지만 중립성 훼손과 의심을 완전히 지우긴 힘들다. 더구나 우리나라 주요 대형 로펌의 사건을 모두 제외하면 실제로 권 후보자가 대법관이 돼 다룰 수 있는 사건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임기 6년 내내 그런 '반쪽 대법관'이 사법부에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직무를 수행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권 후보자로선 고민이 필요하다.
권 후보자는 63건의 법률의견서를 모두 제출해야 한다는 요구에 비밀유지 조항 등을 들어 단 1건만 공개한 상태다. 그러나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의혹을 해소하고 반쪽 대법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제한적 공개라도 해서 검증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공정성과 중립성, 독립성에 대한 의지와 자격을 스스로 증명하는 게 대법관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