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시럽급여? "회사가 못 주겠다고 협박"

입력
2023.07.17 18:00
직장갑질119 실업급여 제보 공개
"회사 갑질, 협박에 정당한 급여도 못 받아"
"실업자 모욕 아니라, 갑질 단속 먼저"

“회사에서 실업급여를 받게 해줬으니 연차수당을 안 주겠다고 합니다. 만약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로 걸면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하겠다고 하네요.”

회사 직속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던 직장인 A씨. 계약만료로 퇴사한 후 실업급여를 받고 있지만 회사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회사가 재직 중 발생한 연차수당 지급을 거절하면서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실업급여도 못 받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가 17일 공개한 실업급여 지급 관련 제보ㆍ상담 실태다. 정부ㆍ여당은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에 빗대 고용 취약계층을 ‘도덕적으로 해이한 집단’처럼 비하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비자발적 퇴직’(권고사직ㆍ계약만료ㆍ회사 도산 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회사의 허위신고와 방해로 실업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단체에 따르면 직장인 B씨는 회사의 사업 축소로 권고사직을 당했지만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비자발적 퇴직이 발생할 경우 정부 지원이 끊긴다는 이유로 B씨를 ‘자발적 퇴직’으로 허위신고했다. B씨도 회사와 싸우다 지쳐 '개인 사정(자발적 퇴직)'으로 사직서를 써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 지원금을 받는 회사에서 비자발적으로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기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업자가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등으로 회사를 신고하면 회사는 ‘실업급여 취소’ 카드로 근로자를 협박하기도 한다. 직장인 C씨는 “(고용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더니 해고를 당했다”며 “회사 대표는 '차라리 벌금을 내고 실업급여를 취소시키겠다'고 한다. 신고를 취소할 생각이 없는데 그동안 받은 실업급여를 반환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실업급여를 두고 회사 측의 ‘갑질’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제안이다. 단체는 △회사 측이 가진 '이직확인서 작성 권한'을 노사 양측에 균등하게 부여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경우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실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며 △정부지원금 지급 중단 사유에 ‘자진 퇴사 강요’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소속 조영훈(노무법인 오늘)노무사는 “실업급여를 ‘꽁돈’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시럽급여' 비하) 발상이 나오는 것인데, 정작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이직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실업자 모욕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실업급여 갑질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