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사람을 연기하잖아요. 정말 좋았죠."
최근 화상으로 만난 미국 할리우드 스타 조이 살다나(45)는 이렇게 말하는 게 자신도 신기한 듯 크게 웃었다. 반가울 법도 한 것이, 살다나는 연기 인생 절반을 '외계인'으로 살았다. 2009년 '아바타'의 뾰족한 귀와 긴 꼬리를 지닌 나비족부터 올해 5월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에서 우주선을 타고 전투를 벌이는 사이보그 가모라까지. 최근 10여 년 동안 얼굴을 온통 초록색이나 파란색의 특수 분장으로 가린 채 카메라 앞에 섰던 살다나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새 시리즈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에서 드디어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가 드라마에서 맡은 역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에서 반(反)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암사자' 즉 라이어니스팀의 팀장 조. 살다나는 극에서 대원 크루즈 마누엘로스(레이슬라 데 올리베이라)와 CIA 감독관 케이틀린 미드(니콜 키드먼) 등 여성 요원들과 테러 조직 잠입을 기획한다. 남성 요원 중심의 첩보 시리즈 '007' '미션임파서블'과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그는 변화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가 있잖아요? 여주인공의 작품은 (남주인공 위주의 업계 현실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이런 작품이 제겐 누구와 함께 있는 것 같고, 때론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게 하죠."
미리 공개된 예고 영상 등을 보면, 조이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성들을 강인한 여군으로 훈련한다. '라이어니스' 속 인물들의 배경과 살다나의 삶은 묘하게 겹친다. 살다나는 9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어머니는 호텔 청소일로 자식들을 키웠다. 2000년 영화 '열정의 무대'로 데뷔한 살다나는 활동 초기 번번이 출연을 거절당했다. 그는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데뷔 초 "감독님이 당신을 정말 좋아했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고 싶어 한다"란 말을 자주 들었다고 고백했다. 백인 중심으로 굴러가던 '화이트 할리우드'가 살다나와 같은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계 배우를 거절하는 방식이었다. 살다나가 SF 장르에 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이어니스'에서 일과 가족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조이처럼 세 아이를 둔 살다나도 '워킹맘'의 삶이 때론 버겁다. 살다나도 육아에서 '어머니 치트키'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살다나가 앉은 의자 옆 테이블엔 그가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 세워져 있었다.
차별에 맞서 SF로 활로를 찾은 살다나는 시네스타픽처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이야기도 발굴하고 있다. 모험을 즐기는 그는 지난해 한국 전통시장을 찾아 막걸리 등도 마셨다. 한국 현대사도 그의 관심사 중 하나다. 살다나는 2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일본에 사과하라는 뜻의 영문 'Say sorry'를 올렸다. 8부작으로 제작된 '라이어니스'는 파라마운트플러스가 국내 OTT 티빙을 통해 23일 첫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