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키운 '대기의 강', 물폭탄으로 쏟아졌다

입력
2023.07.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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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 누적 강수량, 동 기간 평균 2.1배
지구온난화로 늘어난 대기 중 수증기 영향
"선상 강수대 패턴 고착화로 강하고 센 비"

13일부터 본격화하며 사망·실종 49명(17일 기준)의 인명 피해를 낸 이번 폭우는 강수량 자체가 많을뿐더러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상공에 수증기 유입이 많았던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 중 수분량 증가와 그와 함께 형성된 '대기의 강'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기상청은 이번 호우(13~17일 오전 6시)의 강수량 기록을 최근 10여 년간의 주요 호우 사례와 비교한 자료를 발표했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7월 26~28일) △지난해 수도권 집중호우(8월 8~9일) △지난해 태풍 힌남노(9월 4~6일)가 비교 대상이다.

이번 호우는 일일 강수량이 최대 388.0㎜로 수도권 집중호우(381.5㎜), 우면산 산사태(359㎜), 태풍 힌남노(342.2㎜)를 앞질렀다. 최다 누적강수량(570.5㎜) 역시 집계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영향도 있어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수도권 집중호우 때의 534.0㎜였다. 장마 기간 전반으로 넓혀도 지난달 25일부터 16일까지 누적강수량은 전국 평균 511.7㎜로, 평년 동 기간(238.4㎜)의 2배를 넘는 기록적 수치다.

다만 이번 호우의 시간당 최고 강수량은 수도권 집중호우(141.5㎜)의 절반 수준인 73.6㎜로 비교 대상 가운데 가장 적었다. 박정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13~17일 강수량은 정체전선(장마전선)상의 강한 구름 떼도 있긴 하나 그보다는 지속적으로 많은 비가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호우가 기록적 강수량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①많은 수증기량 ②'대기의 강' 현상 ③지구온난화 영향을 이유로 꼽는다. 정체전선(장마전선)은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고온다습한 기단(공기덩어리)과 북쪽 대륙에서 내려오는 한랭건조한 기단이 충돌하며 형성되는데, 이 전선에 수증기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조건이 조성되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①수증기량이 많은 건 가강수량(대기 중 수증기량)으로 확인된다. 평소엔 이 수치가 50~60㎜ 정도인데 이번 호우 때는 70㎜ 수준이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연구관을 지낸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학과)는 "기상청 수증기 영상 등을 보면 동남아시아 열대 해역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한반도로 들어오고, 중국 대륙에서도 뭉텅이 구름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고 분석했다.

②수증기가 가늘고 기다란 띠 형태로 이동하는 것을 '대기의 강'이라고 한다. 많은 양과 높은 강도의 비를 수반하는 대기 현상이다. 올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물난리 원인으로도 지목됐다. 올해 한반도에도 남쪽 북태평양고기압과 서쪽 티베트고기압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대기의 강이 상륙했고, 이곳에 가늘고 긴 '선상(線狀) 강수대'가 형성됐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예전엔 장마전선이 생겨도 비교적 폭넓게 비가 내렸지만, 선상 강수대가 형성되면 강우 강도가 세지고 집중적으로 내리게 되며 이런 현상이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③수증기량 증가와 대기의 강 형성에는 결국 '뜨거워진 지구'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권원태 기후변화학회 고문은 "온도가 1도 오르면 대기 중 수증기량이 약 7% 늘어나는데, 여름철에 더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수증기량이 늘었을 것"이라면서 "여기에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영향으로 상대 습도가 굉장히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