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마음껏 먹으니 한국 의사 안 부러워요" 방글라데시에 의료시스템 선물한 부부 의사

입력
2023.07.17 16:00
24면
부부 의사 안미홍·김동연씨, JW성천상 수상자
2003년 KOICA 파견 후 의료 선교 꿈 키워
귀국 후 2년 만 돌아가 현지 의료시스템 구축
시골에 고교 과정 없어 자녀들 교육 위해 귀국



환자들이 비용을 못 낼 때 후원 받기 위해 부탁하는 일이 어려웠고 위독한 환자 중 누구를 선택할지 힘들었습니다.
의사 안미홍씨


제11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된 부부 의사 김동연·안미홍는 17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15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JW그룹 공익재단 중외학술복지재단 측은 이 상이 제정된 이래 부부가 함께 수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재단은 수상자 선정 이유로 "두 사람은 의사로서 명예와 안정적 삶을 뒤로한 채 의료 불모지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에서 15년 넘게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아왔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참된 인술을 통해 생명존중 정신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연세대 원주의대와 연세대 의대를 각각 졸업한 이들은 1999년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강남 세브란스병원 내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수련했다. 동갑내기인 부부는 의료 선교의 꿈을 펼치기 위해 2003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파견 의사가 돼 처음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열악한 현지 의료 상황을 마주한 이들은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며 의료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부부는 2007년 이 나라로 돌아가 북서부 농촌 지역 램(LAMB) 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재개했고 가장 취약한 응급·중환자 치료에 집중했다. 부부는 당시 유일한 한국인 의료인이었다고 재단 측은 전했다.

안씨는 "가난한 중증환자들의 치료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며 "치료를 하려면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렇다고 완치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무작정 돈을 들여 치료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모른 채 그저 집에 가고 싶어하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최선일까 늘상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에 살았다면? 질문에 돌아온 답은

김씨는 램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 혈전 용해술과 급성 복막 투석 등을 처음 실시했고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체계를 정립하고 중환자 전문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데 힘썼다. 안씨는 KOICA와 지역사회 보건 사업인 지역 안전분만시설 운영 사업을 진행하고 시골 마을 현지 보건·의료환경 개선에 이바지했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으로 고통받은 현지 여성·미성년 환자들을 위해 병원 취약층 관리팀에서 환자들을 상담했다.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에 살았다면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었을까. 이들 부부는 이런 우문에 "그런 아쉬움은 전혀 없다. 물가가 워낙 싸고 시골에 사니 큰 돈 들어갈 일 없었다"며 "비싼 망고를 마음껏 따 먹으며 지낼 수 있어 좋았고, 후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는 현답을 내놨다. 낯선 땅에서 지낸 15년 동안 세 자녀는 대학교 4학년, 1학년, 중학교 3학년으로 성장했다. 이들 가족은 자녀 교육을 위해 당분간 한국에서 지내기로 했다. 시골에는 고등학교 과정이 없어서다.

안씨는 "첫째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둘째와 셋째는 현지에서 나고 자랐는데 아이들이 시골 친구들과 어울려 맨발로 망고 따먹으러 다니고 순수하게 자라줬다"며 "아주 시골이라 인터넷이 늦게까지 안 들어와서 경제적으로는 한국만큼 풍요롭지 않아도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컸다"고 설명했다. 현지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사회에 귀감이 되는 참 의료인을 발굴하기 위해 재단이 2012년 제정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30일 경기 과천시 JW과천사옥에서 열린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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