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80% 정도로 낮추려면 최소 13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명목 GDP 성장률을 웃돌지 않도록 지속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나온 것이다.
17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이 낸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연평균 명목 GDP 성장률 4%, 명목 가계부채 증가율 2%'로 가정한 경우 2036년쯤 가계부채가 GDP 80% 수준으로 내려앉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은 앞서 "가계부채는 GDP 대비 80%가 이상적"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2022년 4분기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GDP 105%로 주요 43개국 중 3번째로 높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GDP의 100%에 도달하는 데만도 2~14년이 걸린다. 명목 성장률 4%, 가계부채 증가율 2~3.6%로 가정한 결과다. 주요국도 가계부채를 GDP 수준으로 낮추는 데 최소 5년(노르웨이, 아일랜드)에서 18년(덴마크, 네덜란드)이 걸린 데다, 우리 가계는 처분이 어려운 실물자산 비중이 높아 디레버리징(부채 감소)이 더딜 수밖에 없다.
고소득 대출자 비중이 높고, 담보 물건의 실제 가치 대비 대출액(담보인정비율·LTV)이 낮은 편이라 가계부채가 당장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위험은 적다. 그러나 "장기 성장률을 낮추고 자산불평등을 확대하기 때문에 점진적인 디레버리징이 필요하다"는 게 보고서 주장이다. 자산불평등과 관련, 소득 5분위(고소득) 가구 중 신규 대출받은 가구의 순자산 증가액은 부채가 없거나 상환한 가구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4분위 가구는 대출과 순자산 증감 사이의 관련이 뚜렷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가 완만하게 감소하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보고서는 ①가계대출의 수익성이 높고(연체율이 낮고) 자본 규제가 낮아 금융사의 선호도가 높고 ②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이 주요국 대비 5~7년 늦었으며 ③오랜 저금리에 투자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세자금대출 확대도 부채 증가에 기여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①금융사의 가계대출 취급 유인을 줄이고 ②대출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후자의 경우 △DSR 예외 대상 축소 △LTV 수준별 차등금리 적용 △일시상환방식에 가산금리 적용 등을 언급했다. 전세·중도금 또는 만기 연장 대출에 DSR이 적용되지 않고, 만기일시상환식 대출 비율도 53.7%(지난해 말)로 높아 부채 체감도가 낮은 현실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보고서는 "거시건전성 규제 효과가 제약될 경우 통화정책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통해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갑자기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이창용 총재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