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집과 논밭 있던 자리엔 시뻘건 진흙뿐...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입력
2023.07.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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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5명 사망·실종된 예천군 백석리
수색견 동원 불구 실종자 수색도 난항
밤사이 재난문자에도 화 피하지 못해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었다. 마을이 있던 자리를 짙은 갈색의 진흙이 뒤덮고 있었다. 산사태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말았다.

경북의 집중호우 인명피해 27명(사망 19명, 실종 8명) 중 17명(사망 9명, 실종 8명)이 집중된 예천군의 산간 마을은 폐허 그 자체였다. 산사태로 다수 마을이 사라졌고, 이들 마을로 가는 도로와 교량도 곳곳이 끊겼다. 가족·친지는 물론이고 구조대원들조차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을 하나가 온통 진흙밭

16일 오전 9시쯤 찾은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15일 새벽 산사태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곳이다. 14가구 주민 24명 중 5분의 1이 넘는 사람이 희생됐다. 산사태 이후 진입로가 다 끊겨 만 하루 이상 외부와 두절됐다가, 이날 오전 겨우 길이 열렸다.

예천읍에서 영주시 봉현면 쪽으로 가는 길에 자리 잡은 백석리는 소백산 동쪽 자락 경사지에 볕 잘 드는 마을이었지만, 이젠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마을 전체에 토사가 들어차 있었고, 진흙더미 사이론 냉장고 세탁기 등 가재도구와 경운기 트랙터 등 농기구가 뒤엉켜 있었다. 찌그러진 채 널브러져 있는 트럭과 승용차를 보면 산사태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7마리의 한우를 키웠다는 축사에선 소를 찾아볼 수 없었고, 흙더미만 들어차 있었다. 마을 뒤쪽과 좌우 산에서는 흙탕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어, 추가적인 붕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허리까지 차오른 진흙 속 구조작업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119구조대원, 군 병력, 경찰관들은 허리까지 빠지는 진흙을 뒤지며 실종자 수색에 여념이 없었다. 119와 군경은 굴착기와 인명구조견까지 동원해 생존자를 찾았지만, 워낙 토사가 깊게 쌓여 수색은 쉽지 않았다. 백석리 마을이 산사태를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굴착기 기사 A(68)씨는 “친구 부부가 사라졌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이거 다 치우려면 한 달은 걸릴 것 같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실종된 주민 중 1명은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지역 유명인사로 알려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주민들은 마을 경로당에서 모여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주민 박모(70) 씨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5일 오전 4시 30분쯤 갑자기 ‘우르르’ 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러다 눈 깜짝할 새 집이 흙더미에 묻혀버려서 놀랄 틈도 없었다니까요. 그나마 동이 틀 무렵이어서 농경지 살피려고 집을 나선 사람이 많아, 피해가 이 정도에 그쳤어요." 최초 신고자인 이근섭(65)씨는 "평생을 살아도 이런 산사태는 처음"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119 등에 산사태를 신고한 뒤, 위험한 상황에서도 다른 집에도 사람이 있는지를 일일이 살폈다고 한다.

예천군 사망·실종 17명

난리가 난 곳은 백석리뿐만이 아니다. 감천면 벌방리와 용문면 사부리에서도 산사태로 집이 매몰돼 2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하는 등, 예천에서만 산사태 희생자가 9명에 이른다. 또 은풍면과 감천면 등에서 물에 휩쓸려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도 8명에 달한다.

예천군의 인명피해가 극심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폭우가 1차 요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4·15일 예천 지역 강수량은 243㎜다.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와 북쪽의 저온건조한 공기가 만나 생긴 엄청난 비구름이 해발 1,000m대 백두대간에 부딪치며, 대간 남동쪽의 예천 지역을 강타했다는 분석이다.

피해 지역 대부분은 산사태 취약지였다. 산림청은 13일 오후 10시 30분부터 경북에 산사태 위기경보 중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했고, 예천군도 14일 밤부터 취약지역에 대피방송과 안내문자를 보냈다. 지역 청년회 등에서도 15일 새벽부터 주민들을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시키며 구조 노력을 했지만, 화를 다 피하진 못했다.


예천= 류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