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마을은 전날 발생한 산사태 때문에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며칠 동안 굵은 빗줄기가 멈추지 않아 마을 주민들의 시름이 깊던 차에, 갑자기 마을로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며 김모(67)씨 집을 덮쳤다. 수십 년간 이곳에 살던 김씨와 그의 첫째 딸(25)이 숨졌고, 아내 정모(58)씨만 가까스로 구조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망한 김씨는 마지막까지 가족을 살리려다 참변을 당했다. 마을 노인회장 유재화(76)씨는 사고 직전 김씨와 만나 "집 옆 수로가 넘쳐서 위험하니 비를 피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씨와 헤어진 지 3분 정도 지났을까. 옆집으로 향하던 유씨는 '쾅'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토사가 빗물과 함께 김씨의 집을 삼키고 있었다. 김씨는 집 안에 있던 식구들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유씨는 "눈앞에서 김씨 집이 무너지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잠을 설쳤다"고 했다.
김씨 가족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이웃들의 안타까움은 더 컸다. 김씨 아내와 첫째 딸은 지적장애인으로, 가족은 국가에서 받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 왔다. 집이 낡아 누수 등 피해가 잦아지자 지난해 정부 지원으로 집을 수리해 겨우 한숨 놓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부녀회장 홍금순(65)씨는 "엄마가 장애가 있어 경제 활동을 하기 힘든 처지라 걱정이 많았다"고 김씨 가족 상황을 전했다.
김씨 옆집에 사는 원모(58)씨도 토사에 파묻혔지만,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원씨는 갑자기 내린 비로 수로가 범람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쏟아지는 토사에 순식간에 휩쓸렸다고 한다. 원씨 아버지 생일을 맞아 식사를 하려 모인 가족이 모두 달려들어 원씨의 허리까지 차오른 토사를 퍼냈고, 구급대원들이 도착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구조됐다. 저체온증으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원씨는 왼쪽 무릎이 골절되고 오른쪽 다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웃에 살던 부녀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산사태가 할퀴고 간 마을은 엉망이 됐다. 주택 곳곳은 외벽이 뜯긴 채로 지붕과 뼈대만 남았고, 주위엔 옷가지들과 농약, 이부자리 등이 나뭇가지들과 뒤엉킨 채 널브러져 있었다. 80가구가 사는 마을 곳곳에 놓인 대형 트럭과 자동차들도 흙에 깔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전날부터 포클레인을 동원해 도로를 덮은 흙을 걷어내고 물길을 만드는 데 한창이었다. 주민 백찬식(67)씨는 "비가 이렇게 내린 건 근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인근 지역 개발 탓에 산사태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마을 위에 있던 작은 밭을 500평 규모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쌓아둔 나무와 돌이 많은 비에 떠밀려 내려왔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한 주민은 "평생 이 마을에 살면서 이런 일은 없었다"며 "밭 개발로 인한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