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과거 이라크처럼 국군을 파병한 지역을 제외하면 우리 대통령이 직접 전장을 찾은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안보·인도·재건을 망라한 지원프로그램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순방 기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폴란드 방문에 이어 우크라이나와 손을 맞잡으면서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의 정점을 찍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와 연대를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반면 러시아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은 커졌다.
윤 대통령은 예정된 귀국 일정을 급박하게 늦추면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국경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대통령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언론공동발표를 통해 “한국의 안보 지원, 인도 지원, 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싸워나간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5박 6일 유럽 순방의 메시지가 응축된 표현이다. 아울러 “지난해 방탄복, 헬멧과 같은 군수물자를 지원한 데 이어 올해도 더 큰 규모로 군수물자를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쟁 해법으로 전 세계에 제안한 ‘평화공식 정상회의’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하는 한편, 인도적 지원 규모를 지난해 1억 달러에서 올해 1억5,000만 달러로 늘렸다.
앞서 방문한 리투아니아에서 2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나토와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했다. 이로써 양측은 분야별로 협력을 제도화하는 '구체적' 관계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이 "대서양 안보와 태평양 안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하자 나토는 5년 만에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규탄하는 성명으로 화답했다.
다만 대우크라이나 지원 수위를 이처럼 끌어올리면서 '비살상물자'에 한정된 정부의 지원 원칙이 깨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시와 이르핀시를 가장 먼저 찾았다. 부차시는 러시아 침공에 따른 대표적인 학살 현장이고, 이르핀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곳이다.
윤 대통령은 4월 외신인터뷰에서 민간인 대규모 공격, 대량학살을 전제로 “인도지원이나 재정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16일 "한국이 그동안 지켜온 원칙하에서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한국 간에 돕고 또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경제적 실익'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담긴 또 다른 기대효과다. 전후 재건사업 규모는 최대 2,0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서유럽에 경제원조를 쏟아부은 것에 빗대 '제2의 마셜플랜'으로 불린다.
윤 대통령은 13일 우크라이나 재건의 전초기지인 폴란드를 찾아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폴란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 참여를 선언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를 직접 찾아 지원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재건사업을 위한 3각(한국-폴란드-우크라이나) 협력 체계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당시 언론공동발표에서 “우리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양국 정부와 기업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지난 5월 양국 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기본협정이 가서명된 것을 환영하고, 한국 재정당국이 이미 배정해 둔 1억 달러의 사업기금을 활용해 인프라 건설 등 양국 간 협력사업을 신속히 발굴하고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대 520억 달러(약 66조 원)에 달하는 공공·민간사업 참여를 추진 중이다. 폴란드는 이미 5월 정부 간 협력창구를 통해 이 가운데 200억 달러 규모(5,000여 개 재건 프로젝트)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