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단 정치와 괴담

입력
2023.07.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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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빠져드는 내집단 편향 현상을 경계해야

요즘 과학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따라 사회과학 용어를 하나 소개한다. 심리학, 언론학에서 많이 다루는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은 대체로 내가 속한 집단에는 관대하고 그 구성원을 우월하게 평가한다. 반면 상대 집단은 과소평가하고, 부정적인 사람들로 어렴풋하게 인식하는 사회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반칙은 좀 너그럽게 넘긴다. 반면 일본 선수의 반칙에는 격하게 분노하고 일본팀이 자주 반칙을 일삼는 집단인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것과 같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런 내집단 편향 현상을 자주 활용해 '내집단 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사람들이 내면에 갖고 있는 내·외집단의 구분을 증폭시키고, 외집단을 배척해서 내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려고 한다. 우리나라같이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의 성향이 큰 사회에서는 이런 정치 활동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던가. 그러나 이런 현상이 극대화했을 때 사회 부작용은 심각하게 나타난다. 정치가 양극화하고 극단적인 차별과 혐오가 나타나기도 한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이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등 극한 사례는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되는 '괴담'이라는 용어는 이런 맥락에서 내집단 편향을 자극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얘기를 뭉뚱그려 괴담으로 치부하는 순간 대화는 단절된다. 상대편의 합리적 문제제기도 ‘근거 없이 떠도는 괴이한 이야기’로 변신해 버린다. 상대를 거짓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정치인들의 메시지는 ‘네 편’이 아닌 ‘내 편’을 향하게 된다. 유권자도 쉽게 내집단 편향에 빠져든다. 내 편의 주장은 크고 또렷하게 들리는 반면, 네 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들의 모습이 부도덕한 집단의 형상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립적으로 양쪽의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할 언론까지 나서서 한쪽의 이야기를 괴담으로 단정 짓는 것은 그래서 더 부적절하다.

설마 세계 최상위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얄팍한 편가르기 수법에 쉽게 넘어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집단 편향은 인지수준이 높아지거나 교육을 많이 받더라도 극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스타노비치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응용심리학·인간개발학과)는 ‘우리편 편향’이라는 책에서 내집단 편향은 “인지능력과도 상관이 없을뿐더러 교육 수준과도 관련이 없어서 소위 사회의 리더라는 엘리트 지식인 집단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며 “TV 토론 프로그램에 지성의 대표 토론자로 나온 교수들의 주장이 전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고 편향된 주장만 내세우는 것에서 쉽게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괴담’이나 ‘정치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내집단 편향에 끌리는 마음을 다잡을 책임은 개인 각자에게 있다. 정치 집단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열린 공간에서 주장과 반론이 오고 가야만 가능하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수많은 팩트가 검증되고, 거짓 주장이 사라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걸 투명하게 내보일 책임이 정치인과 언론에 있다. 그리고 개인은 ‘내집단 편향’이라는 단순한 사고 오류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 정치도 주식투자도 직접 하지 않고 남에게 믿고 맡길 때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강희경 커넥트팀 차장 ksta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