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여름밤. 난데없는 두통으로 머리가 아파 잠이 오지 않네요. 가는 곳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냉방병에 걸렸나 봅니다. 진통제를 하나 먹고 자려고 상비약 상자를 열었습니다. 아뿔싸, 사용기한이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기나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집에 사용기한이 지난 약이 쌓여있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코로나19 유행 초반에만 해도 타이레놀 등 진통해열제를 구하기 어려워서 난리였잖아요. 하지만 약국에서 파는 상비약은 보통 사용기한이 2~3년인데 사실 1년 안에는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은 정해진 복용 기간이 지나면 버려야 하고요.
남은 약은 아깝다고 끌어안고 있는 대신 과감하게 폐기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쓰레기통에 바로 던져버리시면 안 됩니다. 슬기로운 분리배출 방법은 따로 있거든요.
약은 잘못된 방식으로 버리면 환경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 화학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쓰레기통에 버릴 경우 다른 쓰레기와 함께 매립되면서 토양이 오염될 수 있습니다. 액체 약을 하수구나 변기에 버리시는 분도 있는데요. 이렇게 하시면 지하수나 하천에 약 성분이 섞이게 됩니다. 물고기 기형이 발생하거나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가 확산되면 결국 인간의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전 세계 곳곳에서 이로 인한 환경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해 영국 요크대 등 국제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8년에 서울 한강 8개 지점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분석 대상 약물 61종 중 23종이 검출됐다고 합니다. 검출량은 조사 대상 137곳 중 43위입니다. 당뇨약 성분인 메트포르민이 가장 많이 검출됐고, 간질 발작 치료용인 가바펜틴이나 통증치료제인 프레가발린 등도 나왔다고 하네요. 하수처리장을 거치고도 완전히 걸러지지 않은 거죠.
이렇다 보니 정부는 폐의약품을 생활계 ‘유해’ 폐기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환경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가정 내 폐의약품 회수·처리 사업을 하고 있어요. 보건소나 약국, 주민센터 등에 설치한 폐의약품 수거함을 통해 사용기한이 지난 약을 별도로 수거하고 있죠. 일부 약국은 폐의약품을 직접 수거하고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사용기한이 지난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습니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5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이분들이 다 먹지 못한 처방약 949건을 어떻게 처리했나 봤더니 절반이 넘는 55.2%(524건)가 쓰레기나 하수구, 변기에 버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먹기 위해 보관한 경우가 36.1%(343건), 지인이나 가족에게 나눠줬다는 경우도 6건이나 있었죠. 약국이나 의사, 보건소 등에 반환했다는 경우는 단 6%(76건)에 불과했습니다.
올바른 배출 방식을 모르거나, 수거함이 너무 멀어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최근엔 세종시와 서울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집에 남은 약을 우체통에 넣으면 우편물과 함께 회수하는 방식입니다. 우체통은 이미 많은 곳에 설치돼 있으니 접근성이 높고, 따로 수거함을 만들 필요도 없다는 장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입니다. 지난 1월부터 5개월간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세종시는 폐의약품 회수율이 지난해보다 월평균 71%나 늘었다고 하네요.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수거한 폐의약품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사실 간단합니다. 각 지자체별로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집하 장소를 정해두고 한곳에 모아둡니다. 의약품이 많이 쌓이면 폐기물 소각장으로 가져가서 태웁니다. 특별한 소각장이 아닌 일반 쓰레기와 같은 소각장을 이용하는데요. 다만 다른 폐기물과 절대 섞이지 않게 구분해 처리하고, 매립하지 않는 게 차이입니다.
수거함에 폐의약품을 버릴 때는 포장된 그대로 넣으시면 됩니다. 우체통에 넣을 경우 주민센터에서 배부하는 회수봉투에 넣어 버려주세요. 일반 종이봉투에 폐의약품이라고 적어 밀봉한 뒤 버리셔도 됩니다. 물이나 시럽 형태의 약, 연고 등도 같이 버릴 수 있는데요. 이런 종류는 터져서 다른 우편물을 오염시킬 수도 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우체통이 아닌 폐의약품수거함에 버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약 말고 영양제는 어떻게 버려야 할까요? 마트나 쇼핑몰에서 산 영양제도 있지만, 약국에서 구입할 때도 있으니까요.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포장을 봤을 때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이라고 써 있는 것만 따로 버리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약국 영양제 중에서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다른 곳에서 산 영양제는 건강기능식품이라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헷갈린다면 폐의약품에 넣으셔도 됩니다. 김정환 서울시 사업장폐기물팀장은 “영양제 모양이 약과 비슷해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폐의약품 수거함에 넣어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동물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폐의약품 수거함에 넣어서 버려야 합니다. “사람 약이든 동물 약이든 절대 하수구에 버리지만 말라”는 게 김정환 팀장의 당부입니다. 집에 고양이에게 발라주던 물약도 방치돼 있는데요. 사람 약과 함께 들고 가서 근처 주민센터에 분리배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