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은 영국 남부 웨스트 서식스에서 열린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핵심 전동화 전략 'N 브랜드'의 첫 번째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을 공개한 뒤 열린 경영진 질의응답에서 테슬라의 충전기를 언급했다. 테슬라 충전 규격을 현대차도 공유하는지 묻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동안 테슬라 충전 규격 채택에 두루뭉수리 답변을 해 온 그가 "고객이 원한다면 바꾸겠다"는 신호를 내놓은 것이다.
장 사장은 "테슬라 규격을 사용했을 때 현대차 고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고려해야 하고 충전 효율이 효과적으로 나오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테슬라도 우리를 도와줘야 할 것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사장이 이런 답변을 한 배경에는 여러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테슬라의 전기차 충전 규격에 동참하고 있는 환경 변화가 있다. 테슬라가 미국에서 자사 급속 충전기 슈퍼차저를 다른 완성차 기업에 개방하자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볼보 등 완성차 기업들이 줄줄이 이 충전 규격을 쓰기로 합의하며 이른바 '충전 동맹'이 형성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같은 포트(CCS1)를 쓰는 주요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도 최근 이 방식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장 사장은 이어 "테슬라에 충전하러 갔는데 충전이 더 오래 걸리고 테슬라 고객에게 적용되는 충전 요금 할인은 우리 고객에게 어떻게 적용할 건지 등 고객에게 혜택이 되는 부분(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충전 연합에 가입을 할지 등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충전 동맹' 합류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①현재 테슬라 충전 시스템이 제공하는 전압으로는 현대차의 초고속 충전 속도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앞서 장 사장은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테슬라 슈퍼차저에 현대차 차량을 연결해보면 현재 기준으로는 오히려 충전 속도가 늦어져서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고객이 이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니면 테슬라가 변화를 일으킬지(충전 속도를 높일지) 협의가 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유는 ②국내 전기차 충전소에선 이미 CCS1 규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테슬라 방식을 택할 경우 한국에선 기존 규격(CCS1)을 유지하고 유럽에선 또 다른 규격을 사용하게 된다. 차량 생산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한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아이오닉 5 N 월드 프리미어 행사 현장에서 이 차를 타본 소감을 묻자 "재밌다"며 "(이 차는) 운전을 직접 해보셔야 한다. 옆에 타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이어 그는 "전기차 퍼포먼스를 조금 더 강화해 스포츠 버전을 만들었고 소리는 내연기관 엔진처럼 들리게 해서 운전을 재밌게 한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