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아침마다 날아드는 까마귀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봉투를 쪼아 뜯은 후 내용물을 먹다 사방에 흩뿌리는가 하면, 머리 바로 위로 날며 위협하기도 한다. 놀이터 주변을 맴도는 일도 잦아 아이들에게 덤비지 않을까 부모들은 노심초사다. 주민 김우영(35)씨는 “까마귀가 음식물쓰레기에서 닭 뼈를 물고 가다 아이 머리 위에 떨어뜨려 놀란 적이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충북 단양군에서 내수면어업을 하는 어민들은 남한강에 날아드는 민물가마우지 떼에 울상이다. 2017년쯤부터 서너 마리가 짝을 지어 다니더니, 최근엔 수백 마리가 1년 내내 양식장에 찾아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어민 이재완(63)씨는 “민물가마우지가 몰려와 매일 엄청나게 물고기를 잡아먹어 토종물고기 씨가 마를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기후 및 생태계 변화 등으로 서식 환경이 달라진 까마귀와 가마우지가 전국 곳곳에 출몰하면서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유해조수(장기간에 걸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로 지정되지 않아 포획도 할 수 없는 탓에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해 사람을 공격하거나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민원이 빗발쳐 정부와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25개 구청에 접수된 까마귀 관련 민원은 25건이다. 모두 ‘사람을 공격한다’는 내용이었다. 까마귀 출현으로 실제 소방이 출동하는 일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 19건이던 출동 건수는 2021년 22건, 지난해 26건으로 증가(서울소방재난본부)했다. 성북구 주민 유지연(34)씨는 “빵을 사서 들고 가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계속 부리를 들이대며 쫓아와 혼비백산했다”면서 “바깥에 빵을 진열해 놓은 제과점 앞엔 요샌 비둘기만큼 까마귀도 자주 나타나더라”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등 도심에서 목격되는 까마귀는 주로 ‘큰부리까마귀’다. 철새인 떼까마귀와 일반 까마귀와 달리 환경부 지정 유해조수가 아니어서 함부로 잡거나 죽일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도심에 녹지 조성이 잘된 데다 천적인 까치가 유해조수로 관리되면서 큰부리까마귀가 세를 확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창원 등에서도 최근 비슷한 피해 사례가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민물가마우지도 골칫거리다. 원래는 겨울 철새지만 강원ㆍ충청 등지에 자리를 잡고 아예 텃새화하고 있다.
정부는 1999년 260여 마리에 불과했던 민물가마우지가 지난해 3만2,000여 마리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추산한다. 2003년 김포시에서 100쌍이 번식한 것이 처음 확인된 후 경기 양평, 춘천 의암호, 수원 서호 등에서 집단번식지가 발견됐다.
한 마리당 하루에 500~700g의 물고기를 먹을 정도로 식성이 왕성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다. 양식장에 무리 지어 몰려와 종일 물고기를 사냥하기 때문이다. 어민 이씨는 “어민 6명이 모인 어업공동체에서 3년 전만 해도 잡고기를 1년에 7, 8톤(t)은 공동판매했는데 지금은 100㎏도 안 잡힌다”며 “쏘가리나 빠가사리, 뱀장어는 낮에 은신처에 들어가 있어서 큰 영향이 없는데 모래무지와 매자 등 토종물고기는 낮에 활동하는 터라 가마우지 눈에 잘 띄어 수가 크게 줄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민물가마우지 떼가 자리를 잡은 작은 섬이나 나무에 배설물이 쌓여 식물들이 고사하면서 발생하는 생태계 피해도 적잖다. 민물가마우지 역시 유해조수가 아니라 대대적으로 포획할 수가 없다. 이씨는 “지속적으로 유해조수 지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몇 년째 소식이 없어 애가 탄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민물가마우지의 유해조수 지정 여부에 대해 조만간 결론을 낼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했고, 최종 검토 단계다.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조건 포획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반론도 적잖아 야생동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심 중이다. 큰부리까마귀의 경우는 조금 더 지켜보겠단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 자치구에서 원하는 주민들에게 기피제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일단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