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면 책장을 온통 시집으로 채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외면받는 책장이 되었고, 한 권 한 권 진열할 때 설렜던 손길로 시무룩하게 시집들을 거두어 지금은 잘 안 보이는 곳, 책방지기가 주로 일하는 테이블 옆 아담한 책장에 빼곡하게 꽂아두었습니다.
시집을 펼쳐 가장 먼저 읽는 것은 '시인의 말'입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함축되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시인의 말'이 없는 시집을 만났습니다. 박소란 시인의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 짐작 없이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담담한 슬픔 속 미어터질 듯한 눈물의 시들을 지나 마지막 시를 읽고서야 이 시집의 '시인의 말'은 가장 처음에 놓인 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장에 가까운 말'의 마지막 시 '지익'에는 상고를 졸업했지만 도시로 가지 못하고 고향에 남아 불편한 다리를 지익- 지익- 끌고 다니며 소 먹일 여물을 끓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는 외양간 흙벽에 기대어 열차의 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꿈, 그 어슷한 기망을 곱싸박듯 읊조리곤' 합니다. 마지막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눈시울을 훔치며 달려와
저녁을 먹기 위해 말없이 숟가락을 든 젖은 손등 위 한줄기 우직한 심줄에도
막 새살이 오른 듯 뜨거운 빛이 돌았네
- 박소란 시 '지익' 중에서
아마도 아버지의 묵은 꿈은 묵은 채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눈시울을 훔친 손등에서 막 새살이 오른 듯한 뜨거운 빛을 봅니다. 슬픔을 극복하거나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그 슬픔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시집의 첫 시로 돌아가 보게 됩니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 박소란 시 '노래는 아무것도' 중에서
노래, 즉 시는 구원도, 영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지익' 속 아버지의 슬픈 모습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걸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만으로 따뜻함을 느끼듯, 시 역시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 박소란 시 '노래는 아무것도' 중에서
시인은 아무것도 아닌 노래는 '흉터를 후벼대는 칼'이라고도 노래합니다. 시에 어떤 목적이나 수단 또는 흔한 다짐을 싣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픔 그 자체를 실어 보내겠다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시가 '시인의 말'을 대신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무용하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합니다. 無用.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입니다. 책방을 찾는 이들이 어렵다며 지나쳐버리는 시집들은 진짜 무용할지도 모릅니다.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하고, 더듬더듬 의미를 찾아본다 해도 아프기만 한 시들을 만나기 일쑤입니다. 무용함으로 치자면 동네책방은 시에 버금갑니다. 온라인 서점에 비해 직접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견뎌야 하고, 찾는 책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있고, 동네책방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용한 목적과 수단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공감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시와 동네책방의 닮은 점일까요? 다만 시도, 동네책방도 한 번 만나서는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여러 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커다란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주 동네책방에 가서 자주 시집을 펼쳐주시기를, 용기 내어 책방지기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시집 속 시인의 말에도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