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야경’에서 배우는 미술복원 이야기

입력
2023.07.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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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00년 만에 발견된 그림 속 화학성분 ‘포름산납’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지난 1월 해외언론 문화 뉴스를 장식했던 짤막한 보도가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의 ‘야경’(Night Watch) 복원 과정 중에 새로운 화학 물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소식에 대한 나의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미술사의 아픈 손가락, 렘브란트의 ‘야경’

‘빛의 화가, 자화상의 대가’로 통하는 렘브란트는 서양미술사의 대표 ‘셀럽’(유명인사)이다. 그가 남긴 많은 명화 중에서도 ‘야경’만큼 유명한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으로 치자면, 태어나면서부터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으며 고단한 400년을 살아낸 신선과 같은 존재랄까. 높이 3.8미터, 너비 4.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이 그림의 원래 이름은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다. 대원들 총 18명이 ‘더치페이’ 방식으로 제작비를 지불하기로 하고 민병대 건물에 걸 요량으로 단체사진을 주문했는데 3년 만에 완성된 그림은 큰 논란이 됐다. “아니, 의뢰인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것도 모자라서 돈을 내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그려 넣다니!”라며 난리가 났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후 암스테르담 시청으로 그림을 옮기면서 사이즈가 맞지 않다며 윗부분과 좌측 일부를 잘라냈다. 잘린 원본은 사라졌다.

20세기 내내 이 그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11년, 해군에서 해고된 남성이 자신의 생활고를 고발하기 위해 칼로 작품을 훼손하려 했다. 칼이 살짝 표면에 닿았으나 다행히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 피해를 염려한 미술관 측이 이 큰 작품을 돌돌 말아 따로 보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표면이 일부 파손됐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처음으로 현대적인 미술복원 작업이 실시되었는데, 이때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 실제로는 밤이 아닌 낮의 풍경이었다. 약 100년 동안 온갖 수분, 그을 등이 섞이며 표면이 검게 변한 작품을 보며 18세기부터 300년 동안 “밤에 출동하는 민병대”라는 의미로 “야경”이라 불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야경”으로 불린다. ‘공공연한 비밀’처럼 밤이 아님을 알지만 ‘밤’이라고 불러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와 의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라서 그렇다.

이후에도 그림의 수난은 계속됐다. 1975년 사건은 더 잔혹했다. 정신질환을 앓던 실직 교사가 큰 빵칼로 작품을 30여 차례 난도질했다. 이 사건으로 처참하게 찢긴 ‘야경’은 응급실에 실려 갔고 4년의 치료 끝에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 또 사건이 터졌다. 정신병동에서 탈출한 남성이 몰래 병에 담아온 산을 작품 위에 뿌리고 말았다. 보안 요원이 곧바로 작품 위에 물을 뿌리는 응급조치를 하여 다행히 큰 훼손을 막았다.

태어날 때부터 욕먹고, 이후에 잘리고 뜯기고, 옮겨지고, 말려지고, 난도질 되고, 산이 뿌려지고…이처럼 고생한 작품이 또 있을까? ‘야경’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드디어 2019년, 암스테르담 미술관은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특수 제작한 유리벽 안에서 이루어진 작업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21년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예전에 잘려 나간 부분의 재현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러 논의 끝에 AI가 적용한 부분은 원본일 수 없기에 그 상태가 ‘원본’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AI 복원 그림은 단 3개월 동안만 전시됐다.

새로운 화학성분 ‘포름산납’이 발견됐다는데?

그런데 2023년 1월, 어떤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렘브란트의 ‘야경’에서 ‘포름산납(lead formate)’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17세기 유화 물감에 납 성분이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 때문에 밤처럼 검게 변한 것도 이미 밝혀진 일인데, ‘포름산납’은 무엇이며 왜 의미가 있는 걸까? 구체적인 설명 없이 “미술복원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고 덧붙인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난감했다. 나만 이해를 못하는 건가, 기자들도 나처럼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셀럽을 쫓아다니는 파파라치의 가십성 보도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곧바로 차를 몰아 일산으로 달렸다. 나의 대학 선배, 김겸 박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김 박사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미술복원가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전공하고 삼성문화재단 보존연구소를 거쳐 일본과 영국에서 보존복원을 공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팀 팀장으로 근무했고 현재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링컨 대성당에서부터 고 이한열의 운동화, 광화문의 ‘해머링맨’(보로프스키), 이순신 동상 등의 조형물, 마르셀 뒤샹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평면 작품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내게는 대학시절의 특별한 선배다. 후배의 느닷없는 방문이 민폐가 되었을 법도 한데 김겸 박사는 친절하게, 무엇보다도 쉽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미술복원가 김겸 박사가 알려주는 ‘포름산납’의 의미

미술복원은 크게는 보존(conservation)과 복원(restore)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는 먼저 생각해야 하는 대전제 두 가지가 있다. ‘왜?’ 그리고 ‘어떻게?’다. 우선 왜 복원을 하는가? 미술작품이나 유물을 복원한다는 것은 기억과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며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시간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 인문학, 예술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전제는 ‘어떻게’에 대한 것인데, 이것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리화학적 법칙에 대한 이해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2법칙 ‘엔트로피 증대 법칙’을 알아야 한다. 이 법칙은 지금 여기 렘브란트가 그린 400년 전 그림 속에도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기름(유분)과 물(수분)이 있다. 살아 있을 때 이 둘은 공존하다가 분리되면 공존하지 못한다. 과거 화가들이 사용한 린시드유는 아마씨에서 추출했다. 살아 있던 씨 속의 기름과 물은 잘 섞여 있었지만, 씨에서 짜낸 기름은 이제 더 이상 물과 섞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화가가 안료 가루(금속성 이온 물질)에 기름(그물망 유기물 구조체)을 섞어 칠하고 나면 공기 중의 산소를 매개로 기름 분자들이 결합하며 굳어간다. 완전히 경화된 유화기름은 천천히 산화되고 분해되며 소위 ‘비누화’가 되는데, 기름으로 추출되기 이전 살아있었던 것처럼 수분과 결합하는 상태가 된다. 결과적으로 탁하고 뿌옇게 변하며 공기 중 수분과 함께 각종 오염물의 공격에 약해지는 것이다. 그 피해 중 하나가 황화수소와 상처 속에 드러난 안료의 납이 만나 검게 변하는 현상이다.

렘브란트를 포함한 17세기 유화들 표면이 검게 변하는 이유는 아마씨 기름 속에 있는 납백 성분이 황화수소와 결합하면서 황화납이 되는 과정 때문이다. 여기에 보존처리를 위해 사용하는 바니스가 시간에 지나면서 황변되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렘브란트의 ‘야경’이 밤 풍경처럼 어둡게 변했다. 그러니까 지난 1월의 뉴스, 이 ‘포름산납’의 발견은 ‘야경’이 밤같이 어두워진 이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새로운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현재는 납 성분의 물감을 사용하지 않지만, 이런 물감을 사용했던 예전 그림들 중에서 ‘포름산납’이 발견된 사례는 100년에서 150년 전 정도였다. 이보다 더 오래된 유화 그림에서 ‘포름산납’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성분은 200년 이상 남아 있지 못하고 포름산을 방출하며 사라지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1642년에 제작된, 그러니까 거의 400년 전 그림 표면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 납이 포함된 오래된 유화를 급격히 손상시켰던 원인을 규명하거나, 반대로 아주 오래 보존시킬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특이하고 신기한 건 맞는데, 이것이 과학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엄청난 양의 전수조사, 후속연구가 뒷받침된 후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도 겨우 하나 찾을 정도라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모든 변수를 다 확인할 길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400년 동안 ‘야경’은 많은 바니스 칠이 더해졌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5년마다 새로 칠해진다. 즉 우연의 복합으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유기물의 변화과정은 너무나 변수가 많다. 과학은 신중해야 한다. 하나의 근거로 확증적 답이라고 주장하면 안 되는 이유다. 종합하자면, 이번 보도는 다소 섣부르고 가십성으로 느껴질 여지는 있다. 특이한 발견인 건 맞지만 설명이 부족한 기사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함께 생각해 볼 거리는 많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직업, 미술복원가

김 박사의 마지막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나만 해도 이 일을 계기로 미술복원에 대해 좀 더 깊게 배우게 되었으니 이미 유의미한 일이다. 끝으로 미술복원 분야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렸다.

“자녀가 미술복원에 관심을 가진다면 불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 본인의 열정이겠죠. 그러나 아이들이 아이돌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훨씬 남는 일이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미술복원은 인문학과 과학이 함께하는 가장 융합적인 분야입니다. 물론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AI 시대에 결코 사라지지 않은 직업 중 하나가 미술복원가입니다. 이유는 대상이 예술작품이기 때문이죠. 예술작품의 해석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고, 그 판단은 인간의 몫이거든요. 시각예술은 인간이 눈으로 작품을 볼 때 시작되며, 그 시작에 관여하는 직업이 미술복원가들이죠.”

그렇다. 지난 2021년 잘려 나간 ‘야경’의 일부분을 AI가 복원하여 잠시 이어 붙였지만 결국 떼어냈다. 그 판단은 우리 인간이 한다. AI가 인간 자체를 복원해 준다면 모를까, 미술복원가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요구될 것이다. 선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작업실 문을 나서는데 과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학생 아들에게 해 줄 말이 내게 한 아름 안겨 있었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 2018)에서 미술복원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미술교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