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유일한 우방국에 뒤통수를 맞았다. 우크라이나군 거물급 포로 5명이 억류 중이던 튀르키예에서 풀려나 조국으로 돌아갔는데, 러시아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이에 러시아가 "튀르키예가 합의를 깼다"며 격분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쟁 초기 마리우폴 제철소에서 러시아에 석 달을 대항한 끝에 체포된 우크라이나 지휘관 5명이 8일 귀국했다. 전날 튀르키예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 포로 송환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며 협상 중재국이자 포로를 붙잡아뒀던 튀르키예에 거세게 항의했다.
이 포로들은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인 마리우폴 주둔군의 지휘관이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도시 전체를 포위하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보급마저 끊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 또한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최후 거점 삼아 악착같이 맞섰으나 패배해 약 1,000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방어선 구축 시간을 벌어 준 ‘영웅’이지만, 러시아에서는 ‘목숨이 질긴 악마’로 통했다.
지난해 9월,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개입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중재로 러시아는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붙잡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러시아 포로와 교환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종전 때까지 튀르키예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방국에 거물급 포로를 묶어 둔 일종의 ‘보험’이었던 셈이다.
러시아가 튀르키예에 포로를 맡긴 건 두 나라의 정치적 우호관계를 믿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무기와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계속 수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재집권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칭했고,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논의도 오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러나 '푸틴에게만 충성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며 공개 지지를 보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줄타기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튀르키예의 몸집을 키우겠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러시아는 튀르키예를 '손절'하는 대신 책임을 나토에 돌렸다.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다음 주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원국들이 튀르키예를 강하게 압박한 결과 포로들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