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공동으로 뉴욕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가하였다. 첫 번째 세션 사회를 맡은 대니 럿셀 전 미 국무부 아·태 차관보는 필자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윤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을 밝혀왔고, 작년 12월에는 '인·태 전략'을 발표하고, 지난주에는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주면 좋겠다."
필자는 이 세 가지 구상을 각각 소개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므로 세 구상이 공유하는 '최대공약수'를 이야기하겠다고 전제하고,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였다. 첫째, 이 구상들은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국제 정치 현실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정치, 외교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임을 설명하였다.
둘째, 이 구상들은 이러한 현실 인식하에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노력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협력하에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지켜 나가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것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이뤄진 질의·응답, 다음 날 개최된 전문가들과의 비공개 회의, 이들과의 개별적 대화 등을 통하여 미국 측 참석자들이 어떤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미측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3월 일본 방문에 관심을 표시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여 한·미·일 간의 협력이 더욱 구체화되기를 희망하였다. 이어서, 어려운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일본 방문의 결단을 내린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미측 인사들은 또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면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 측 참석자가 "대만 사태는 한국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무역로로서의 동중국해 중요성, 대만 침공 시 주한미군의 투입과 이로 인해 생길 한반도의 안보 공백 등을 설명하는 것을 깊은 관심을 갖고 경청하였다.
이와 다른 맥락에서 필자는 우리나라가 '인·태 전략'을 발표하자 이것이 중국과의 관계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몇 가지를 설명드렸다. 즉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현실과 경제적 여건상 중국과의 협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나 그것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호혜, 상호 존중이라는 원칙 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4월 국빈 방미 시 발표된 '워싱턴선언'이 대다수 우리 국민들이 북핵에 대해 갖고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국 측의 관심이 높았다. 필자는 우리 국민들이 확장 억제력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결정 과정에 우리나라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데 있으므로, '워싱턴선언'의 핵심은 '공동 기획'과 '공동 집행'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두 가지 요소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나토에 구성된 핵 기획그룹(NPG)과 마찬가지로 한·미 간에 구성될 핵 협의그룹(NCG)에도 상설 실무 그룹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틀간 회의에 참석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전문가들이 '국가안보전략' 등 윤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외교·안보 정책에 깊은 관심과 협력 의지를 갖는 긍정적 모멘텀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심이 되는 진전이고, 우리 정부가 이러한 모멘텀을 더 큰 결실로 이어가리라 기대한다.